우리에게 오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28 3월, 2018

우리에게 오는 것, 우리 주변의 환경이 모두 중요하지도, 좋지도 않다. 일상 생활에 적절한 감정적, 심리적 필터가 있으면 우리에게 해가 되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그런 상황들은 양의 옷을 입은 늑대와 같은, 과부하, 스트레스, 쓰라린 경험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와도 같은 존재다.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만, 동등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필터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게 왜 안좋은지 이해해야하니까, 오늘은 피곤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하겠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가장 흔한 형태의 피로는 육체적으로 많이 움직일 때 야기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더 습관적이고 만성적인 또 다른 종류의 피곤함이 존재한다.

“속임수는 우리를 죽이지만, 희망이 우리를 회생시킨다.”
-조지 샌드-

우리에게 오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심신적 피로감으로 인해 목의 통증, 요통, 두통, 소화 장애 등이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녹초가 되었다’라고 표현한다. 정신적인 범위를 넘어서, 신체적으로도 이 정도로 녹초가 된 상태는 진단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우울증을 유발하기도한다.

이러한 각박한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을 여과없이 받아들일 때 발생한다. 만약 우리가 장벽이나 선을 긋지 않고 우리를 기분 나쁘게 만들고, 해치거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들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패배감, 무관심, 좌절감 등을 겪게 될 것이다.

인간은 모두 현실을 다르게 본다: 스스로를 보호한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매우 일반적인 ‘개방성’ 문제

인간의 행동에 있어서 개방적인 태도는 어느 정도 확실하게 필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배우고, 새로운 지식을 기존의 상식과 통합하고, 개방적인 마음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받아들이면 무척 도움될 때가 있다.

때때로 우리는 정확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직되고 폐쇄적인 사고 방식은 발전을 저지할 뿐만 아니라,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도 앗아간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수용적인 태도를 고수해야한다. 마치 주변을 모두 흡수하는 스폰지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뇌의 본능적인 사고방식은 우리의 심리적 균형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수용적인 태도를 고수한다고해서 늘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퇴화시키기도한다. 이성적이고 감정을 자극하는 행동 치료법 전문가인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가 말한 “불행의 3가지(the triad of unhappiness)”를 기억하는 것이 좋다.

개미

엘리스에 따르면, 우리는 스스로를 절망과 불행으로 인도하도록 유도하는 세가지 종류의 불합리적인 기대감을 갖고 산다고한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끝내야한다는 비상식적인 사고방식이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을 들어야해”와 같은 생각 또한 우리가 “날 걱정시키는 것을 해결하려고 할 필요는 없어”와 같은 생각과 함께 그만둬야하는 사고방식이다. 너무 수용적인 태도를 고수하다보면 싫어하는 상황을 회피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에게 타이르게 된다. 우리는 마치 물에 녹는 소금마냥, 스스로를 주변에 녹아들게 만든다. 절대 이래서는 안된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라

스스로의 이익을 얻으면서 남에게 양보하는 것의 균형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은 그것을 위해서 타인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할 의향이 있는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것이 우리의 것으로 만들 만큼 가치있지는 않다.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오로지 인간의 독창성만이 한계가 없다.”
-라빈드라나스 타고레(Rabindranath Tagore)-

적절한 개인적 한계를 설정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본적인 전략이 우리의 개인적 성장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 우리를 둘러싸는 밝고 따뜻한 원을 상상해보자. 이 원 안에서 우리는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를 받고, 타인의 세계에 스며들지 않으면서도 공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보호막이다.

원형 나무

이 마법같은 장판에는 ‘유연함’이라는 탁월한 성질이 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남들과 소통하고,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원은 지혜롭다. 무언가가 우리를 해치려 할 때, 그 방어적인 장벽으로 인해 우리의 가치, 자존감, 정체성을 보호해준다. 만일 어떤 일이 일어나서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다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우리를 보호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선 긋기는 보통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형성되지만, 살다가 그 벽이 무너지고 해를 입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괜찮다. 세계 종말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저 벽의 부서진 부분을 치유하고, 강하고 단단한 또 다른 완벽한 원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지, 어떤 사람을 멀리하고 싶은지, 가짜 친구가 누구인지, 가짜 꿈은, 거짓 희망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된다.

반드시 이렇게 한계를 그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