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픈 이웃

01 1월, 2019

골치 아픈 이웃. 이는 누구도 원치 않는 악몽이다. 아파트, 콘도 그리고 다른 공유 삶 공간의 인기가 늘어나면서 이웃 문제도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 몇몇 경우에는 살인까지도 일어났다.

골치 아픈 이웃

어떤 상황들은 무자비한 전쟁과 다를 바 없다. 갈등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곰팡내 나는 벽의 공유,  불쾌한 큰 음악 소리, 짜증나는 애완 동물 등이다… 자그마한 일도 대결로 이어지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웃들 간의 괴롭힘 사건은 너무 자주 일어나서 심리학은 그에 대한 용어, 블로킹이란 말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 뜻은 왕따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 공격성, 강압 그리고  감정적인 불내성 등을 뜻한다.

“자신의 문간이 더럽다고 이웃집 지붕에 있는 눈을 탓하지 마라.”

-공자-

막나가는 골치 아픈 이웃이 많다

이웃 간의 갈등

자그마한 일이 이웃 간의 갈등을 촉발하고 더 큰 일로 번진다. 그것은 보통 권력 싸움이다.

쌍방이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강요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쌍방 모두가 타협할 생각은 없다 –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싶어한다.

많은 아파트와 공유 공간에서는 사람들은 시끄럽고 험담하기를 좋아한다. 그룹이 파벌처럼 행동하고 온갖 험담과 소문이 돌아다니고 증폭된다.

“아무개가 항상 술을 요구해요. 그게 누군지 어떻게 알아.” “아무개는 매일 밤 다른 여자와 있는게 보여.”

빌딩을 공유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남의 일에 손가락 질 할 권리를 준다.

그리고 험담에서 갈등으로의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어울리지 못하는 이웃들이 결국, 상대방이 피해를 입힌다고, 해를 끼친다고, 혹은 강도짓을 한다고 서로를 비난하게 된다. 결국, 공통 요소는 대개 불신과 의심이다.

이웃이란 것이 지인과 친구 사이 어딘가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웃 간의 문제는 공개 전쟁을 선포함이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공유 공간에서의 사생활

이웃을 선택할 만큼 운이 좋은 사람은 거의 없다.

오고 가는 이웃은 순전히 운에 따른다. 이웃들이 공통점이 좀 있기는 하다 (같은 빌딩에 살고, 소득 계층이 비슷하고, 습관이 비슷하고 등등).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멀리서 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같은 골치 아픈 이웃은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그저 용인하지 못한다.

공유 공간에서 사생활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 새벽 2시에 음악을 크게 틀어댄다면 물론 이는 골치 아픈 이웃이 분명하다. 그런데 대낮에 자신의 집에서 그림을 걸려고 벽에 못을 박는 걸 못하게 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못 박는 걸 조용히 할 방법은 없고 짜증스럽긴 하지만 전쟁으로 갈 만큼 심각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다투고 나서 애완 동물을 음독시키거나 문간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말이 안된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런 일이 벽을 공유하는 이웃들 사이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예전과 같지 않다. 예전에는 모두 집에 살았고 남을 괴롭히기기 쉽지 않았었다.

오늘날에는, 집안 싸움에 벽 너머의 구경꾼이 있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생활과 공적 생활 사이의 경계가 더 이상 분명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눈, 귀, 행동으로 집안이 침범당하는 느낌이 쉽게 든다.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 대부분은 하고싶은 일을 집안에서 남 눈초리 안봐 가면서 하고 싶어한다.  요즘에는 더 힘들고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확실히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은 갈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상황이 산 지옥이 되기 전에 성숙한 대화의 문을 여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상황이 악화 일로로 치닫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이건 전쟁을 선포하거나 딴 데로 이사를 가기 전에 화해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웃과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