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어떤 의견보다도 중요한 나의 양심

· 2017-09-21

나에게 있어 어떤 의견보다도 중요한 나의 양심: 인간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마침내 인간이 성숙하여, 인간의 내재된 양심이 ‘깨어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주변의 잡음에 맞서 내면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위치를 확실히 하는 그 순간이 말이다. 이 세상에서, 차분한 마음을 갖고, 차분한 양심을 품은 채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만큼 더 편안한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안토니오 다마시오는, 인간의 감정과 신경과학에 대한 권위자로서 유명하다. 그는 인간의 양심이란 개념을, 인간 자신의 자서전적인 자신의 모습과, 다른 사회적인 자신,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영혼을 묶는 제 3의 자신, 이 모든 것의 미묘한 조화라고 정의했다. 이 특이하고 독특한 양심의 구조는, 우리에게 현실을 좀더 제대로, 꾸준히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생각을, 당신의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말하려는데, 당신이 이 이후에 분명한 양심에 대해 자각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마라: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우리 모두 내면에 양심이 존재하며, 그것은 마치 영혼의 숨결, 우리의 감정의 등대와도 같아, 우리의 마음 속에 메아리친다. 양심은 무엇이 맞는 것이고, 무엇이 다른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당신은 이를 적절하게 조율하여, 당신의 내면의 각성을 이루어, 두려움 없이 행동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텔레파시 - 나에게 있어 어떤 의견보다도 중요한 나의 양심

양심을 깨우는 것은, 가끔은 고통스런 일일 수도 있다

심리학자 칼 융이 한때, “당신을 깨우기 위해서는, 당신의 내면을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칼 융은 초기 정신 분석학의 틀을 잡아낸 유명한 심리학자였지만, 그의 방법론적 이론은 다른 인문학적 분야, 예를 들어 인류학, 신화, 그리고 철학 등에도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한편, 그의 양심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우리의 내면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안토니오 다마시오와 같은 신경학자들처럼, 융은 인간의 양심을, 우리의 내면의 가장 깊은 부분과, 우리의 감정적 경험들의 조합이며, 정신적인 존재라고 정의했다. 이를 깨우기 위해, 우리의 불쾌한 역사, 실수, 그리고 구려움이나 망설임으로 가득했던 가치나 원리에도 마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덕적인 양심에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영역을 마주한다는 것은, 간혹 정말로 고통스런 일이기도 하다. 칼 융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내면의 영혼과, 양심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빛’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이 ‘모호함’에 대해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자유를 느끼게 될 때에야, 우리는 우리의 내면과 통합되어, 치유될 수 있게 된다.

달빛 - 나에게 있어 어떤 의견보다도 중요한 나의 양심

조용한 양심,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운동

현재 전해지는 많은 정치적/사회적 이야기들은, 현재 도덕적 양심이 결여된 상태이다. 인간의 도덕성,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은 반드시 번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인간 사회는 이기심과 자신만의 이익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도덕성에서 도망친 상태와도 같다.

이 마음의 자각을 위해, 적절한 전략을 세워보도록 하자: 조용하지만 애정어린,꾸준한 목소리로, 인간의 상호 존중, 그리고 자기 존중을 일깨워야 한다.

달이 빛나는 하늘 - 나에게 있어 어떤 의견보다도 중요한 나의 양심

자유롭고, 존중어린 양심을 발전시키는 방법

우리의 개인의 양심은, 대대손손 이어져온 도덕적인 가르침보다 그 이상의 개념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알지도 못했던 때부터, ‘우리는 양심을 느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우리의 게으름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각을 이루고, 우리의 양심을 자각해야만 한다.

이 양심의 자각을 어떻게 이뤄야 할지, 그리고 이를 위해 인간의 양심을 발현할 때,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내면을 뒤지는 일 없이, 자연스레 바라보는 예술과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기 위해’ 시간을 굉장히 많이 소비하기도 한다.  이것은 공평함을 유지하는 양심의 발전 단계이며,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의문도 없이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줄 지, 무엇을 하도록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할 지 제안하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 제 2단계로서, 우리의 내면을 어떻게 ‘볼 지’ 배워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볼 지, 보지 않을 지, 1단계에서 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호기심, 욕망에 의해 인도될 수 있고, 우리가 해낼 때, 우리가 볼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관심하지 않다: 우리는 무엇이건 느끼고, 즐거워하고, 질색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 3단계로는, 우리의 고려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가장 높은 부류의 지식은, 만물의 존재 이유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려하는 마음가지는, 우리 주변의 ‘내면 깊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매우 소중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내면의 ‘나’,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볼 수 있는 나와의 연결을 통해, 나만의 의견을 보고, 나만의 가치를 보고, 의문의 여지 없는, 스스로와의 통합을 비로소 이룰 수 있다.
손 위의 빛 - 나에게 있어 어떤 의견보다도 중요한 나의 양심

우리의 양심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감정을 비추는 빛, 우리의 마음과 연결된 빛 아래에서, 고려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변에서는 외부의 소음이나 남의 의견들로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인간의 양심은, 이 세상의 만물의 금은보화보다도 소중하다. 마치, 우리가 잠을 자기 위한 편안한 베개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