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는 연인 사이의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오해는 연인 사이의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놓아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원하는데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오해,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진실된 감정보다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듯, 인생은 긴 여정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좋은 것을 이용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방법을 배워간다. 웃긴 점은, 거의 막바지에 되서나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라는 여정의 과정에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기도 한다.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커다란 벽이 생성된다. 이 벽으로 인해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들 사이를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의사 소통 방식과 다른 사람들의 의도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우선시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열매와 잡초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뇌는 마치 같은 채널에 고정되어있는 라디오와도 같다. 때때로 라디오에서는 재밌고 유익한 방송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매우 해로운 방송이 나오기도한다.
채널을 바꿀 수는 없지만, 방송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주변에서 우리에게 하는 모든 말들을 다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라디오에서 우리가 싫어하는 내용이 나오면, 귀를 닫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당신이 정원사고, 자신이 맡은 정원에 있는 식물들은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들이라고 상상해보자. 이 식물의 종은 어떤가? 식물들은 어떻게 생겼는가?
정원사로서, 우리는 식물을 돌보고, 새로운 씨앗을 심고, 가꾸고, 물을 주는 책임을 진 유일한 ㅏ람이다. 그렇다면, 본인은 본인의 정원을 어떻게 가꾸고 있는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 식물을 돌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식물이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꽃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계획했던 것보다 성장이 더딜 수도 있다. 심지어 관심과 노력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들기도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어떻게 헌신했는지다. 충분히 헌신하지 못했다면 이유가 무엇인가? 일상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오해는 연인 사이의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가끔 정원에서 원치 않는 잡초들이 자라날 때도 있다. 그러면 필사적으로 잡초를 박멸하려고한다. 잡초를 보는대로 뽑아 버리는 정원사를 상상해 보아라. 하지만 잡초는 계속해서 피어난다. 그러면 정원사가 그것들을 다시 한번 뽑아낸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해봐야, 잡초는 멈추지 않는다.
이 정원사는 본인이 싫어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는 동안 본인이 정말로 귀하게 생각하고있는 식물은 방치하고있는 중이다. 아무리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뽑는 일이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내버려두고 있는지는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
세상에는 불가피하게 우리가 싫어하는 식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식물들은 필수적이다. 장미도 잘 자라나기 위해서는 가시가 필요한 법이다.
이 이야기대로, 우리는 중요한 것들에 더 많이 집중해야한다. 잡초는 성가시지만, 그부다 더 신경써야할 식물들이 많다.
이 이야기는 식물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될 수 있다. 필요없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오해가 일어날 수 있다. 이것들이 쌓이면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