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보다는 사랑이 훨씬 더 낫다

13 3월, 2018
 

폭력보다는 사랑이 훨씬 더 낫다. 오늘 이 글은 아이들에게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나는 이런 표현을 길 가다가, 놀이터에서, 학교에서, SNS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다. 너무 슬픈 현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교육방식에서 이제는 여러 방식으로 부모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교육방식으로 변한 듯하다. 마치 상대론이 지배하고 있던 바벨탑의 한 형태와 비슷하다. 모든 것이 좋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나쁠 수도 있다. 그 노래에서 나오듯, 결국 상대적인 가치다.

사실 이 모든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교육할 때는 분명한 한계선이 존재해야한다. 그 중 하나는 폭력이다.

사랑의 매는 폭력이다

“난 우리 아이를 때린 적이 없다. 그저 말 잘 들으라고 가끔 가다 야단칠 뿐이다.” “애를 때리면 걔보다 내가 더 아프 것 같다.” “나도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우선 아이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폭력이 원하는 목적을 이뤄준다는 인상을 심어주게되면, 아이들은 그대로 보고 자란다.

결국 아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어떤 교육도 아닌 바로 우리의 행동임을 명심해라. 우리가 보이는 모범보다 아이들에게 빠른 세뇌를 시키는 것도 없다.

아마 아이들이 당장 주변 친구를 때리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선생님, 부모님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 훗날에라도 폭력을 선택 사항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자기 친구를 매우 좋아하는 아이들도 친구를 때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럴 정도인데,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겠는가?

 

“때려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는걸요.” 이런 말을 통해 짜증을 폭력으로 풀어낸다고 고백한다. 이는 부모가 다른 방법으로는 아이를 훈육시키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많은 경우, 자기가 원치 않는 폭력을 행사하기 싫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를 감춘다. 분노는 숨길수록 에너지를 축적해, 한 번 터질 때 걷잡을 수 없게된다.

폭력보다는 사랑이 훨씬 더 낫다

사랑의 매는 슬픈 매다

사랑의 매는 아이에게 고통을 유발하고 눈물을 뽑아내기 때문에 그냥 슬픈 매다. 그저 두렵고, 슬픈 일일 뿐이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만을 남길 뿐, 어떠한 교훈도 가르치지 못한다. 다른 모든 처벌과 같이, 사랑의 매는 그저 나쁜 기분만 자아낼 뿐이다. 매를 든 부모는 아이에게 맞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남겨주지 않는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 때문에 본인이 남에게 매질 하지는 않게 되더라도, 매를 맞을 떄 느끼는 나쁜 기분을 혼자 조절하지 못하게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 하는 매질은 위협적이고, 차별적이고, 아이를 고립시키고 모욕을 주는 행위다. 아이들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 소리지르고 더 엇나갈 것이며, 옳은 행동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을 것이다.

 

매질을 ‘경험’으로 정당화하는 사람들

또 어떤 사람들은 “난 어릴 때 흠씬 맞았지만, 덕분에 지금 올바른 어른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은 매질 ‘덕분에’ 잘 컸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매질에도 ‘불구하고’ 잘 큰 것이다. 아마 매질 당했을 때 우리를 도와준 다른 어른이 있었을 것이다. 폭력 앞에서도 대화로 풀어나가도록 가르친 누군가가 말이다.

이게 가장 문제임을 알아야한다. 다행히도 한 대 맞았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큰 타격감을 입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매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 인내심, 반성과 아이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을 마치고 집에서 집안일을 할 때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을 잊어서는 안된다.

엄마와 딸 놀라는모습

폭력보다는 사랑이 훨씬 더 낫다

이러려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하는데, 이는 사실 공감력이 부족하면 어렵고, 또 성가시기도하다. 아이들에게 평소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잘못했을 때도 인내심을 갖고 대화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매질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너무 휘어진 나뭇가지를 바로 세울 때 힘을 주지 않고 다시 올바르게 자랄 때까지 사랑으로 보살펴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자. 이러면 누구도 다칠 필요 없고, 이는 아주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그려낼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도 스스로 배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