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혹은 분노: 무엇을 갖고 살 것인가?
유머 혹은 분노 중 어느 것을 갖고 살겠는가? 이 세상에는, 사람들 사이의 어려운 긴장어린 상황을 완화시켜주거나, 당신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요령어린 행동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은 음악과 리듬이 어우러진 것이며, 삶이란 것은 결코 복잡하지 않으며, 삶을 사는 사람이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가벼운 삶을 살고자 한다.
반면에, 이 세상에는 별것 아닌 일에도 말싸움을 벌이고, 삶의 시선이 닫힌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넓은 풍경이나 다른 곳을 향하는 다리를 볼 때, 그 사람들은 막혀버린 벽만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평온한 날에도, 분쟁을 원하는 사람들은 항상 폭풍을 불러오며, 모든 사람들을 싸루게 만들고자 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분노어린 사람? 여유로운 사람? 그 선택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유머 혹은 분노: 무엇을 갖고 살 것인가?
왜 우리 인간의 주변관계는 이토록 복잡한 걸까?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시피, 우리의 정신적인 안정성을 방해하는 사람은 가능하면 피하고,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사람과 지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건강한 마음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게 항상 가능한 선택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살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이 분노어린 사람인지, 유쾌한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유머와 함께 살기
“삶은 언제나 사랑과 유머와 함께해야 한다. 이해하기 위해 사랑하고, 견디기 위해 유머를 배워야 한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과 말다툼을 벌이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린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참 흔하다. 반대로, 모든 것에 웃는 사람도, 의외로 공격성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거나, 스스로를 팍괴시키는 성향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행동들에는 각기 극단적인 면모가 있으며, 그 뒤에는 무언가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웃게 만드는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인걸까?
피터 맥그루는 콜로라도 대학의 심리학자이자, ‘유머 연구소’를 설립한 사람으로서 유명하다. 그들은 치료법으로서의 유머 감각의 영향력에 대해서, 그리고 웃음을 ‘치료제’로서 만성 질환이나 암 환자들에게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계획을 지지하고 있지만, 사실 웃음보다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 환자 본인의 삶의 태도와 내면의 힘, 긍정주의 등등임이, 이미 드러나있다.
맥그루 박사는, 그의 이론에서 유머의 유형을 크게 4가지로 정의했다. 물론 우리를 매번 웃게 만드는사람들이, 대개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 속의 긍정을 항상 바깥으로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하의 유머의 유형들을 잘 알아두어, 적절한 상황에서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 공격적인 유머: 이 유머는, 아이러니와 시니컬한 비꼼을 통해서, 제3자를 조롱하며, 사람을 웃기는 부류의 유머이다.
- 자기발전으로서의 유머: 이 종류의 유머는, 가장 건전한 유머로서,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돕는다. 자신이 오늘 저지른 실수나 뭔가 웃기는 일을 겪은 경우, 이를 통해서 웃을 수 있도록 하는 유머이다. 이 경우, 아이러니를 곁들여서, 결코 웃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일에도 웃음지을 수 있게 한다. 긴장을 푸는 데에도 안성맞춤이다.
- 자기비하적 유머: 이것은 위의 자기발전형의 정반대형의 유머이다. 자신을 비하하며, 파괴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유머의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며, 자신의 우울감이나 자신의 피해자 행세를 위한 성향, 남들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이유 등으로 이 행동을 한다.
- 연계적인 유머: 가장 실용적이고, 멋진 형태의 유머일 것이다. 우리와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를 웃게 만들려는 사람의 긍정적인 유머이며,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유형이다.
이런 유머들을 모두 주목하고 적용하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유머감각이 좋으시군요’라는 말을 할 때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유머를 활용하는지, 주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혹시 우리를 일시적으로 기분 좋게 하는 유머를 들었지만, 나중에 곱씹어보니 사실은 꽤나 불쾌한 내용이었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에 말싸움을 거는 사람.. 정말로 우리에게 해로운 사람들인걸까?
하버드 대학의 긍정 심리학의 전문가인, 탈 벤 샤하르 교수는, ‘행복의 스승’으로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수많은 감정이나 기분을 다룬 저서들은, 항상 우리가 행동 패턴을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의 출처가 되어준다. 예를 들어, 모든 것에 시비를 걸고 다니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에게 어려움을 불러오는 일을 즐기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그의 저서가 도움이 될 것이다.
“악질적 유머는, 우리를 초라하게 한다.” – 도메니코 시에리 에스트라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불행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도 겪을 이유가 없는 개념이지만, 그 뒷편에는 이미 나빠져버린 상황이나, 잘못 해결된 일들이 만화경처럼 널리 퍼져 생긴 결과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제 해결능력이 약한 사람이나, 현실적인 기대를 갖지 못한 사람, 시야가 매우 좁고, 반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자존감이 낮거나, 하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 어려운 시간들을 극복할 수 있다 – 어려운 상황, 어려운 일들이 우리 내면의 약점을 발동시킬 지언정, 우리가 가는 곳마다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다닐지언정, 우리는 모두 극복할 수 있다. 우리의 긍정주의적 가치관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 어떤 일반적인 대화도 논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불쾌함과 불편함의 계곡으로 빠질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것은 일반적이고,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독기어린 환경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다시금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자기 조절을 해내야 한다.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고 그 행세를 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 이것은 그저 자신의 마음의 조각을 다시금 모아서, 자존감이라는 이름의 접착제와 동기라는 이름의 니스로 다시 고쳐내면 되는 문제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든 유쾌한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며, 모든 공격적인 사람들이 불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고, 균형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