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은 아이에게 힘든 일이다

13 2월, 2018
 

엄마,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거절하겠어요. 그러니 엄마가 나를 돌봐 주어야 해요. 엄마의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은 힘들어요. 엄마가 계속 싸우고, 포기하지 않아야 해요. 미소를 잃지 말고, 나와 다정하게 매일 대화하고, 계속 반짝이고, 엄마의 본질을 지키세요.

그래서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엄마. 엄마가 수천 번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해도요. 엄마는 항상 엄마를 지지하고, 가장 순수하고, 깊고, 영원한 사랑에서 구축된 등에 기댈 있어요. 내가 항상 확인할 수 있고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사랑에 말이에요.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인생의 길에서 우리를 막아서는 그 어떤 장애물도 이겨낼 거예요.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를 떠나지 말고, 강해지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나는 세상에서 우리의 여행이 계속되는 언제나 엄마 곁에서 함께 거라고 약속해요.

나는 인생의 단순한 규칙들로 인해 내가 엄마의 존재 없이 살아나가야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나는 엄마가 언제나 (언제나) 나와 함께 거라고 확언할 있어요. 인생을 살아가는 내 걸음은 엄마가 아니었다면 시작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내 두려움을 잠재우지는 못해요…

“엄마의 최악의 결점은 엄마의 사랑에 대해 자녀가 보답하기 전에 떠난다는 것이다. 엄마는 우리가 무기력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어쩔 수 없이 고아라고 느끼게 하며 떠난다. 다행히 엄마는 한 사람이다. 그 누구도 엄마를 두 번 잃는 고통을 견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사벨 아옌데-

 
엄마의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은 아이에게 힘들다

엄마의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은 아이에게 힘든 일이다

우리 내면의 아이는 괴물이나 어둠, 낯선 사람이나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내면의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애정을 가진 존재, 참조할 있는 사람을 잃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냄새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우리의 눈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보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이 그들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여성은 살아가며 수많은 역할을 맡는다. 엄마, 딸, 여자친구, 동지, 여성 말이다. 그러니 언젠가 끝없는 우선순위를 축적하게 된다. 이 사회는 여성에게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수많은 의무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많은 역할을 풀어 나가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는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삶이 보여주는 독특하고 필수적인 어려움에 더해,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해 사회적인 의무를 지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한 사람을 엄청나게 고통받게 할, 극도로 폭발적인 칵테일을 얻게 된다.

 
요가를 하는 엄마와 딸

말이 고통을 준다면, 그것을 표현하라

엄마를 향한 아이의 시선

엄마가 겪는 것을 보게 고통은 자녀로서 보기에도 대단히 파괴적이다. 우리는 엄마를 힘이 다한 전사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과정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어느 순간 자녀에서 “엄마의 엄마/아빠”로 바꾼다. 이 역할을 맡으며 우리는 엄마를 보호하고 고통을 막으려 애쓴다.

우리는 아이가 그네에서 떨어질까 걱정하는 “초보 부모”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에서 보호자가 된다. 우리는 다친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타력을 다시 불러오려는 엔진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여성 세계, 구체적으로 엄마의 세계에 존재하는 엄청난 힘을 깨닫는다.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은 누구나 이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이는 우리가 감정적 성장과 발달을 향한 길에서 한 걸음 더 내딛게 한다. 엄마가 연약해질 엄마를 보호하려는 감정적인 의무감은 우리의 의식을 깨운다. 우리 안에서, 그리고 존재로도 매우 강력한 의식을 말이다. 동시에 이는 우리 내면의 균형을 잠깐이나마 깎아 내리고, 상처 입히며, 무너뜨린다.

 

엄마를 잃는 것은 절대 미리 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스스로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당신 안의 엄청난 힘을 발견한다. 당신은 다친 엄마의 상처를 낫게 하는 천사가 된다. 그리고 우리 내면 세계에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우리 내면의 아이가 가진 따뜻한 시선이 성인의 양심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성숙함을 향한 한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