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을 알고있을까

· 2018-11-21

주변을 둘러봤을 때, 별다른 이나 희망이 없이 지치고 행복하지 않은 삶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꿈을 포기한 이들. 실망스러운 ‘지금의 자신’만 알고 자신이 이룰 수 있었던 멋진 것들을 보지 못하는 이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들은 열정이 없다. 자신이 자신의 미래를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여전히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자신만의 목표나 용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들의 연구, 업무, 결혼 상태 또는 개인적인 조건에 의해 정의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재능이나 가치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과거에 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정작 현재 그들이 일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삶을 위해 꿈을 꾸는 모든 방법들을 버렸다. 이제, 그들은 단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왜 인생에는 자신의 삶을 쥔 고삐를 남에게 줘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까? 그들은 모든 것이 이미 확정되어 버렸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무관심을 정당화한다.

왜 그들은 그들의 꿈을 포기하는 걸까? 그들은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더 커질 수 있는 희망을 왜 포기하기로 결정해 버린 걸까? 이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자.

“왜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산다고 생각할까? 본래는 삶이 우리를 살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 마틸다 아센시, 아르헨티아의 극작가, The Last Cato (2001), Cato ‘s Return (2015)

아직, 살기 위한 오랜 시간이 남아 있다

현재는 현재다, 당신은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이 발견한 현재의 상황은, 자신의 의사 결정, 경험 및 기회의 결과이다. 어쩌면 당신이 기대한 현재와 그렇지 않은 현재에 대해 당신은 지금 괴리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과거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거리감은 우리의 성장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현재는 가장 친한 친구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최악의 적일 수도 있다. 그것은 당신을 묶어버리는 사슬이 될 수도 있고, 당신의 꿈을 이루고,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두 우리가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은 미래를 보거나, 당신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장애물이나 만날 사람들을 온전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무엇이 찾아오게 되든 그에 대한 태도는 결정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당신의 삶과 당신의 길을 집중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상황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인형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당신은 당신의 성격을 포용하고 약점을 받아들이며 한계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당신은 성장할 수 있다.

당신의 제한은 당신 자신이나, 앞으로 당신이 될 수 있는 모습을 정의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의 약점, 한계 및 실수보다 그 이상의 존재이다. 그들은 당신을 정의하지 않으며,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들을 발판으로 여기자. 자신을 아는 순간, 자신의 도전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자신은 잘 알고 있다.

당신의 실수와 한계는 당신의 잠재력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선택에 상관없이 당신이 지금 처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은 엄연한 당신의 능력이다.

하루가 끝났다고 해서 인생을 인도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시하고 향해야 한다. 어떤 인생이 당신에게 던져질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잠재력은 자신에 대한 헌신에 달려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당신의 현재에 도전해야 하는 용기와 당신이 ‘가정’한 것에 달려 있다.

세상에서 당신의 위치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당신은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 참가하여 당신만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그저 당신의 인생을 지켜보는 것이 더 좋은가? ‘피해자’라는 안정감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내 삶의 주체가 되는 불편함을 택하겠는가? 당신은 관찰자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행동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가?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 당신이 전진을 원한다면 당신은 당신을 노예로 만드는 존재를 내버려야 한다. 그것은 사람, 감정, 사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의 행동일 수 있다. 유독한 애착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어쩌면 가질 수 있었을 지 몰라.’라는 사고 방식에 집착한다. 과거의 실수나 결함은 과감히 걷어차야 한다.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당신은 당신의 기대감에 갇혀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몇 번이나 막혀야만 했을까?

우리는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을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특히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우리의 열망을 말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불확실하다. 그것은 우리 중 일부를 겁나게 만들고, 그 성격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흥분시킬 수도 있다. 또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행동과 결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열쇠는 바로 우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자신의 최종 결과를 결정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 자신이 조치를 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앞으로의 길은 우리 자신이 용서하고 분노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장과 진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누구인지 인정하는 법을 배우자. 이것은 우리의 삶을 담당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