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안다고 나에 대해서 아는 건 아니야

05 3월, 2018

우리 말은 듣지도 않고 편견을 갖고 우리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성급하게 진행되는 세상에서, 느긋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이들은 이름을 안다고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며, 겉으로 보이는 것 안에 내면의 싸움이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사회 지능’이라는 책에서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인간의 두뇌를 사회적 기관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인관계는 인간의 생존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인간은 때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동물이라고 지적한다.

넌 내 이름은 알지만 내 사연은 몰라.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지,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모든 대인관계가 긍정적인 영향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요즘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존재는 다름아닌 같은 인간이다. 마치 석탄을 떼울 때와 마찬가지다.

인간은 마치 넓은 바다를 건너는 배와 마찬가지다. 어떨 때는 매우 거칠고, 또 어떨 때는 잠잠하다. 우리는 배의 닻에 매달리느라 내면의 갈등에 집중하지 못하게된다. 어떻게든 미루는,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것이다.

긴 머리의 여자: 이름을 안다고 나에 대해서 아는 건 아니야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이야기

남에게 편견을 갖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시위하는 꼴이다. 외모, 얼굴, 이름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완만한 대인관계를 위해서는 진정한 관심, 감정적 개방성을 갖추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한다.

요즘 많은 치료법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 ‘현재’ 말이다. 하지만 맘에 들든 들지 않든,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다.

과거는 운명을 정의하지 않고, 현재 모습의 윤곽을 잡아준다. 과거의 어려운 일을 해결한 것에 대해 우리는 자부심을 느끼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는 않는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한테만 말하고 끝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완만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 것을 공유해야한다.

남자 파도

관심사를 바꾸자

잠시 마리아라는 57세의 여자를 상상해보자. 그녀는 몇 달 전부터 한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그녀가 비참하고, 내성적이며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중 누구도 마리아가 지난 20년간 학대 당해온 사람임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학대적이던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직장을 잡은 사람이다.

“제 이야기는 즐겁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들처럼 달콤하고, 조화롭지도 않다. 어리석음과 혼란, 광기와 꿈의 정도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같다.”
-헤르만 헤세-

빨리 판단할수록 그 편견은 오래간다.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보는지 매우 잘 알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녀는 남이 동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는 원한다면 자기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관심사를 바꿔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다른 사람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대신에, 그 사람에게 공감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이래야 우리는 단순히 한 공동체에 있는 사람이 아닌, 정말 ‘인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래

이름을 안다고 그 사람을 아는 것은 아니다

공감은 우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존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능이다. 우리는 단순한 에너지 약탈자, 감정의 변화, 혹은 자존감의 실행자보다는 감정적으로 남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우리 모두는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고, 그것은 단지 우리의 이름, 신분 그 이상의 것이다. 칼 세이건(Carl Sagan)이 주장하듯, 우리는 모두 빛날 운명이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빛을 가려버리기도한다. 그런 일이 없도록 섬세하게 남을 존중하는 이타심을 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