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자로서의 생애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자로서의 생애
Gema Sánchez Cuevas

검토 및 승인: 심리학자 Gema Sánchez Cuevas.

작성자: Valeria Sabater

마지막 업데이트: 11 1월, 2023

구토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문학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독재에 반대하는 반역자가 되고 자신 안에 내재된 자유를 사용하라고 독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항상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철학자, 사회 운동가, 저널리스트, 정치가,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와 인문주의 막시즘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그의 업적은 기본적으로 그의 동시대 사람들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생각과 업적은 심리학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다.

훗설, 하이데거와 같은 위대한 독일 철학자의 영향을 받은 사르트르는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그 상을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이상에 따라 원칙을 지키며 살겠다는 확고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앞장섰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통해 자유에는 진정한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철학자, 사회 운동가, 작가로서의 업적 이외에, 그가 심리학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심리학 분야의 새로운 유행의 기반을 다졌는데, 실존주의적 인문주의가 그것이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 자기 이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심리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행복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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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자로서의 생애 01

사르트르는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해군 장교였지만 그가 매우 어린 나이에 사망하고, 그는 그의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손에 자랐다.

어머니인 앤 마리 슈바이처의 영향으로 그는 문학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알버트 슈바이쳐는 그가 철학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1929년 그는 철학 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학생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를 만났다. 그녀는 그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절대 없어서는 안될 지적 동지가 되었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모든 것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독일군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1941년 다시 자유를 찾았지만, 이 사건의 이후 그의 작업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레지스탕스 신문 콩바 (Combat)에서 알베르 카뮈와 함께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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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운동에 헌신한 철학자의 삶

1945년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위대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함께 시작했다. 정치 및 문학 잡지인 레탕모데른 (Les Temps Modernes)이다.

이들의 사회주의적 이념은 이 기간 동안 매우 분명하게 보여지고 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매우 확고한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는 미국이 전파하는 범죄와 부당성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후 1964년, 사르트르는 철학에 대한 그의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상을 수상하지 않았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노벨상을 받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자로서의 비판적 시각을 잃어버리게 할 것이었다. 그는 평생을 헌신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다.

사르트르는 1980년 4월 15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몇 천 명의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을 찾았고 현재, 그의 시신은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구토– 장 폴 사르트르의 가장 주된 문학적 공헌

장 폴 사르트르의 유산과 실존주의적 인문주의에 남긴 공헌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그의 최초 작품인 구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문학적 완성도는 반론의 여지가 없고, 그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방식을 소개했다. 

구토의 영향

사르트르가 베를린에서 살던 26세가 막 지났을 무렵 이 책을 집필했다. 이것은 우연히 히틀러가 권력을 가지게 된 시기와 맞물린다. 이 당시, 그는 오직 후설과 하이데거의 글만 읽었다. 그는 후셀의 현상학과 그의 사건 묘사 방식에 매우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의 가장 잘 알려진 업적이 현상학에 있는 이유이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자신의 경험을 묘사했다. 학교 환경에서 그가 느끼고 감지한 것은 오직 어두움, 공허함, 그리고 의미의 결핍이었다.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자로서의 생애 03

로캉탱, 사르트르의 또 다른 자아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은 사르트르의 또 다른 자아이다. 로캉탱은 매우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가상의 도시에 정착하고자 인도차이나에 온 젊은 남자이다. 그는 18세기 귀족에 관한 전기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 주인공이 한 일은 글을 쓰고 호텔의 주인과 교류하며 재즈를 듣고 독학자와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이었다.

이 주인공은 매우 냉담하다. 이 책을 읽으면, 독자는 주인공이 자신의 주변 상황에 대해 그 무엇도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나의 생각이 바로 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의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렵다, 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가 존재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에서 내가 열망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끌어당길 수 있는 사람이다.”

-장 폴 사르트르, 구토-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싶다면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에서 사르트르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1936년부터 1938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이것은 독일에 나치즘이 부흥하던 시기이다. 또한, 프랑스 사회가 심각한 도덕적 위기를 겪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르트르는 이 심각한 위기를 목격했고, 그것을 구토라는 책 안에 확실하게 반영했다.

사르트르의 마지막 생각

이 책을 통해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를 바랐다. 개인은 독재를 거부할 수 있고 그 무엇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제서야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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