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의 꼽추: 디즈니의 가장 어두운 이야기
노트르담의 꼽추(1996년 작)는 디즈니 영화이지만, 이야기를 소화하기 어려울 수 있는 어두운 줄거리이다. 크리스마스 악몽과 같은 ‘다크한’ 행복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디즈니 영화 중 하나인 타란의 대모험의 무서운 어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트르담의 꼽추의 어둠은 이와 전혀 관련이 없다. 색다르며, 현실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이야기이다. 아마 그 당시에 많은 90년대 아이들이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노트르담의 꼽추는 좋은 평가를 받고, 훌륭한 수익을 냈으며, 좋은 평판을 얻은 유명한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는 우리 대부분이 스토리를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 영화가 디즈니의 역대 상위 10위 영화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노트르담의 꼽추는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잊어버린 듯하다. 어두운 줄거리와 분석할 가치가 있는 배경이 숨겨진 디즈니 영화는 많지만, 노트르담의 꼽추는 디즈니의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사회와 권력을 비롯하여 특히 교회에 대한 비판이 가득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1931년에 출판된 빅토르 위고의 소설인 ‘파리의 노트르담’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의 팬들은 이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원작에 충실한 더 어두운 소설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대로 디즈니는 아이들이 영화관을 떠나지 않도록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었다. 어두운 이야기를 보기 좋은 이야기로 바꾸려는 디즈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많은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영화는 모호했다.
이 소설에는 1939년과 1956년에 촬영된 노트르담의 꼽추로 불리는 다른 두 가지의 더 다듬지 않은 각색 작품이 있다.
성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매우 흥미로운 시나리오와 놀랍고 마음을 사로잡는 메시지가 담긴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인생은 보기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지켜보기만 한다면 나 자신이 없는 인생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라번, 노트르담의 꼽추-
노트르담의 꼽추: 소설과 영화에서 나오는 교회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재판관 프롤로이다. 프롤로는 원작 소설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부주교이지만, 디즈니가 만든 영화에서는 재판관으로 나온다.
이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이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에서는 프롤로가 판사로 나오지만, 캐릭터는 대성당과 관련이 있다.
강한 종교적 신념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옷차림은 성직자를 연상케 한다. 이는 교회의 이미지를 약간 떨어뜨렸다.
프롤로는 법률가와 존경할 만하고 공정한 캐릭터여야 하지만, 정반대이다. 그의 잔인하고 거만한 성격과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롤로는 집시와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모든 이를 싫어한다.
하지만 삶이 순탄치 않게 흘러가면서 결국 절대 느끼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프롤로는 집시인 에스메랄라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향한 프롤로의 감정은 건전하지 않다. 그녀는 마치 ‘악의 화신’처럼 귀하고 유혹적인 대상이 된다.
불현듯 프롤로는 자신의 믿음을 고찰하게 하는 병든 욕망을 갖게 된다. 프롤로는 에스메랄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하나님이 내린 시험이며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심한 집착이 되어, 결국 그녀가 자신의 것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롤로의 집착은 디즈니의 영화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불안감을 주는 순간 중 하나로 이어진다.
종교적인 의미가 처음부터 분명한 노래, 교회 합창단, 거대한 십자가, 프롤로의 옷차림 등 성인의 관점으로 이 모든 것을 깨달으면 프롤로가 단순한 재판관이 아니라 교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음악적 순간은 이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는 무고한 사람에게 형을 선고하고 다른 것을 숨기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재판관이다.
프롤로는 매우 충격적이며 불편한 캐릭터이다. 에스메랄라를 향한 비이성적이고 강박적인 욕망은 영화의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무섭게 다가온다.
청교도적인 사람과 올바른 이미지 뒤에는 도덕 관념이 매우 의심스러운 한 남성이 서 있다.
빅토리 위고의 소설은 연민을 자아낸다기보다 무자비하다. 한편 노트르담의 꼽추는 보기 좋게 각색한 이야기가 많고 논란의 여지가 적어, 일반 대중이 더 쉽게 소화할 수 있다.
프롤로의 캐릭터와 앞서 언급한 음악적인 장면을 통해, 교회에 대한 냉혹한 비판과 교회의 부인할 수 없는 권력의 흔적인 기존의 이야기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다른 점
노트르담의 꼽추는 사회와 교회에 대한 비판 외에도, 차이 또는 수용과 같은 문제를 다룬다.
사람들은 친절을 사람의 이미지와 관련짓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잔인한 재판관과 대부분 사람에게 모습이 불편한 순진하고 착한 캐릭터가 있다. 사회에서는 겉모습으로 인해 콰지모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는 ‘모든 것이 거꾸로 향하는 날’에 노트르담을 빠져나오려고 한다. 이날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이상하게 기념하는 일종의 축제가 열린다.
“오늘은 시도하기에 딱 좋은 날이야.”
-콰지모도,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의 ‘분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면 모두 그를 괴물로 볼 것이다. 오직 한 인물만이 콰지모도를 향한 연민을 보여 준다.
바로 소외되고 핍박당하는 어린 집시인 에스메랄라이다. 그녀는 프롤로와 마주하여 모두를 위한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유일한 전사이다.
프롤로는 콰지모도의 자신감을 매우 떨어뜨려, 결국 콰지모도는 자신을 괴물로 생각하게 된다.
콰지모도는 대성당에 있는 괴물 석상과 일종의 우정을 쌓았다. 에스메랄라와 괴물 석상은 콰지모도의 눈을 뜨게 하여 현실을 보게 한다.
또한, 프롤로에 등을 돌리는 군인인 근위대장 페뷔스도 평등을 위한 투쟁에 동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연 노트르담의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 영화는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하루하루 우리 사이로 걸어 다니는 진정한 모습을 숨긴 괴물의 본성을 보여 준다. 노트르담의 꼽추는 재평가되어야 할 영화이다.
요컨대, 줄거리는 일반적인 어린이 영화보다 더 복잡하고 어둡지만, 정의와 평등을 지지하는 훌륭한 가치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