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유머 감각은 어떤가?

21 7월, 2017

좋은 유머 감각은 가장 소중한 특징 하나이다. 농담을 하고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상쾌한 공기와도 같다. 그들은 가장 쓰디 쓴 인생의 순간에서도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는 훌륭한 덕목 중 하나이다. 이는 항상 의식적이지만은 않은 자동적인 장치로, 잔뜩 쌓인 긴장을 풀기에 더없이 유용하다.

웃음은 그 장난기 많은 면의 본질 속에서 우리가 즉흥적이 되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단 한 번의 웃음은 우리가 같은 목적으로 계획하는 수많은 과제나 활동보다 훨씬 편안하다. 따라서, 웃음은 우리의 활기를 되찾아주고 세상에 대한 태도를 발전시켜주는 마법적인 재산이다.

“유머 감각이 없는 곳에는 도그마가 있다.”

-알퐁소 우시아-

지그문크 프로이트는 정신 분석론 내에서 농담웃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일상의 전환을 통해 무의식적인 세계가 명확하게 표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우리의 열망과 가장 깊은 감정들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을 통해 나타난다.

무엇이 당신을 웃게 하는가?

사람들은 놀라운 상황에서 웃으며, 때때로 터무니없는 일에 대해 웃는다. 또는 완벽히 논리 정연한 무언가가 우스꽝스러운 의미를 얻었을 때에도 웃는다.

오해는 우리가 웃도록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오해는 보통 이중적 의미를 가진 어구나 말장난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세 가지 유형의 농담 또는 웃음의 의미를 주는 것이다. 재미있거나 재치 있는 발언, 지나치게 순수한 농담, 성적이거나 외설적인 농담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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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농담이 검열을 뚫거나 해체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발견했다. 심각한” 세상에서 거의 금기인 문제나 상황을 가져올 있는 재미있는 말이다. 우리가 만드는 많은 농담은 공격적이거나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다른 유형의 맥락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다.

마치 다음의 농담처럼 말이다.

중매인이 고객에게 그의 여자친구 후보로 선택한 여자를 소개했다. 불쾌하게 놀란 이 젊은이가 중매인에게 말했다.

“나에게 도대체 누굴 데려온 겁니까? 저 여자는 못생겼고, 나이도 많고, 사시에다, 이도 없고…”

“좀 더 크게 말해줄 수 있어요?” 상대방이 끼어들었다. “저 여자는 귀머거리거든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 웃기

상황의 요소가 균형을 잡지 못할 때 우스꽝스러움이 생겨난다. 엄청나게 큰 신발을 신어 웃음을 주는 삐에로도 같은 경우이다. 파리, 밀라노, 마드리드 등의 큰 패션 런웨이에서 모두가 발을 헛디디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코미디언은 권력자들을 희화화하거나 잘 알려진 상황을 통해 우스꽝스럽게 한다. 보통 이런 희화화는 어떤 일면을 극대화하거나 주인공의 성격을 극대화해 통렬한 비판을 표현하고, 때때로 극도로 공격적이 된다. 그러나 이는 시민이 권력에 맞서 가지고 있는 도구 하나이기 때문에 그 카타르시스를 공헌한다는 이유로 용납된다.

이런 유형의 농담 또는 희화화가 다음의 예시에서 보여진다.

어머니와 아들:

-아들아, 절대 거짓말하지 말아라. 거짓말쟁이는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단다.

-그럼 우리는 왜 약속을 단 한 가지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투표하죠?

희화화를 통한 조롱과 조소는 우리가 행동에 의문을 가지고, 분석하고, 두려움 없이 표출할 있는 도구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연약한 사람을 향한다면, 그 효과는 반감된다. 이는 연약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수직형 권력과 연관을 맺는다. 이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 것이 아닌 그들을 대상으로 웃는 고전적인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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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농담 또는 순진한 농담에 기초한 유머

많은 농담에서 성적인 주제는 매우 흔하며, 특히 이중적 의미를 많이 사용한다. 한편으로 단어는 성관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히 성관계에 관한 의미라는 것이다. 다음과 같다.

두 친구가 만나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말한다.

-어제 집에 와서 여자친구가 아주 강하고 큰 남자와 침대에 있는 걸 봤어. 놀랍게도 그 남자가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달려들어 구석으로 모는 게 아니겠어? 그리고는 바닥에 선을 긋더니 이렇게 말했어.

-이 선을 밟으면 넌 죽은 목숨이야. 그리고는 다시 내 여자친구가 있는 침대로 뛰어들더니 하던 일을 마저 하는 거야.

-와, 장난 아닌데!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나? 도대체 그 놈은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놈이 날 안 보고 있을 때, 그 선을 밟았지!

이중적 의미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농담은 영원히 금기로 남을 주제 바로 앞까지 가기 때문에 사람들을 웃게 한다. 바로 위의 예시에서, 그 주제 자체보다 더한 것은, 성관계라는 특정한 주제없이 매우 기발한 공식으로 상대방이 성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재치 있고 순진한 농담도 천진난만함과 명백함으로 인해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아기 박쥐가 친구에게 말했다.

-넌 이름이 뭐니?

-“뱀”이야. 두 번째 녀석이 말했다.

-“뱀” 뭐? 첫 번째 녀석이 다시 물었다.

-“뱀 파이어.” 너는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다른”이야.

-“다른” 뭐?

-“다른 뱀파이어.”

이 솔직한 농담은 공격성을 위장하고 있거나 금기를 깨트리는 이중적 의미를 띠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화이트” 유머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대신, 이는 순수한 재치와 완전히 우스꽝스러운 이유에 기반을 둔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는 정신적 게임으로 말장난을 한다.

유머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효한 방식이다. 그러나 그 한계와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머는 모든 상황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적인 농담처럼 어떤 사회적 집단에게 오명을 씌울 때도 여전히 타당한가? 샤를리 엡도 잡지의 가슴 아픈 일들처럼 본능적인 혐오가 유머를 통해 생겨날 있는가? 문제는 여전히 논란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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