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가?

2018-10-26

우리는 우리의 미래는 물론 후대들이 만들 세상을 향한 시선을 멈출 수가 없고, 멈추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은퇴할 때의 사회가 기능을 제대로 할 거대한 결정과 준비를 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아이들은 내일의 어른이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양육하는 방식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가 그 세상에서 강요하는 규범도 변한다. 아이들의 장난감, 관심사, 걱정거리, 열망처럼 우리가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도 세대가 바뀌면서 진화한다.

예를 들면, 육체적 처벌이 적절한 훈육 방식이라는 믿음을 멈추었다. 그래서 교실 폭력이 사라졌다. 교사에게 다른 훈육 방법을 제공해 주었다. 이 방법은 권위를 세우면서도 자로 맞던 폭력을 대체했다. 그래서 권력의 균형이 아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무지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는 너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얼마 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한 광장 사진을 마주했다. 스페인에는 아주 많은 광장 중의 하나였다. 특별히 예쁘지도 않았고, 사진은 전문 사진가가 찍은 것도 아니었다. 급하게, 거의 우연히 찍게 된 사진 같아 보였다.

이 사진이 재미있는 것은 포착한 순간을 넘어선다는 것이었다.  몇몇 가로등 기둥에는 여러 개의 “금지한다” 표지판이 있었다. 첫 번째 표지판은 공 갖고 놀지 말라하고, 둘째는 자전거를 금하고, 셋째는 롤러블레이드를 금하는 것이었다. 궁금해졌다. 왜, 그냥 아예 아이들을 금지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그렇게 표지판을 많이 붙일 필요도 없을텐데? 더 편하고 경제적일텐데?

잠시 후, 나는 또 다른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늦은 오후, 엄마와 아빠가 느긋한 산책을 한다. 차분한 아이를 유모차로 밀면서 걸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원래 그렇다(그리고 우리도 그랬듯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부모의 전략은 분명했다. 아빠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고,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걸 가져갔다. 그리고는 조용해졌다.

혼자 생각에 잠겼다. 문제는 아이들은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귀찮게 하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주 점잖은 어른의 인내심마저 테스트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런 방법은 과연 옳은가?

우리가 원하는 양육은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가 필요하다

왜 이 두 가지 상황을 꺼냈을까?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지금 원하는 것과,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대조 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창조적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받는 가르침은 다르다.  또 아이들이 건강하기를 바라지만, 비 오는 날 흙탕물에서 마구 뛰어놀면 우리의 신경을 건드린다. 아이가 호기심이 가득하기를 바라지만, 아이들이 하는 질문에는 별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우리가 원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노력을 해야한다. 인내를 해야 한다.

아이가 자유 시간에 어떤 계획을 떠올리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좋은 신호가 아니다. 아이가 부모와 놀고 싶어 하지 않고, 부모가 집에 돌아오면 그냥 부모를 놔두고 싶어한다면, 이것 역시도 좋은 현상이 아니다. 아이가 비나 눈이 올 때 놀라움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나가서 놀고 싶지도 않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편안함은 좋지 않다. 아이에게 비누를 물게 하고, 소리 지르고, 때리는 것은 좋지 않지만, 아이가 광장에서 뛰어 놀면서 공유와 질서를 배우지 못하고 뛰어노는 것을 막는다면 그것 역시도 좋지 않다.

아이는 훈육과 한계를 필요로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는 우리의 인내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아이는 놀고, 적어도 놀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