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것 vs. 물러날 때를 아는 것

16 12월, 2017

포기하는 것 vs. 물러날 때를 아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주어야 한다는 과감하고도 위험한 것을 다루는 이야기나, 인간관계 등이 존재한다. 마치 밧줄처럼 너무 꽉 잡아당겼거나, 혹은 혜성처럼 중력권을 탈출하려 해도 할 수 없고, 거미줄에 잡힌 벌레처럼 우리가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것과 같다. 시간에 맞게 도착한 열차가, 제 시간에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놓아준다는 것은, 결코 겁쟁이들이 하는 행동이 아니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놓아준다는 것은, 과감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만일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마주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하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최근까지 매우 중요한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손을 떼는 일은 매우 어렵다. 우리는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가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어떤 형태의 일탈이나 비상사태는, 우리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거면 충분해!” 우리의 마음은 소리친다. 그 때, 우리와 우리의 마음은 무언가에 도달하고, 합의한다.

포기하는 것 vs. 물러날 때를 아는 것

우리의 뇌의, 같은 장소에 머무르고,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사람들과 만나고, 같은 일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은, 우리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기를 힘들게 한다. 이 집착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행동은, “좀만 더 있다가”와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들거나, “좀 더 두고보고 생각할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확실히 알고 있는 점이 있다면, 당연한 변화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은 좀만 더 기다린다는 것은, 곧 너무 많이 기다린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고전적이고, 틀에 박힌 생각, “널 죽이지 않는 것이, 널 강하게 할 것이다.”와 같은 생각에서 자라왔다. 무언가를 버리거나, 누군가를 버린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꺾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왔다.

이제, 과거의 ‘문제’, 우리가 온전하며, 불행을 깨뜨린다고 믿어온 것을 바라보자. 이것은 물리적인 것이다. 우리의 공기와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뒤로 한다는 것은, 명백히 건강하고 용기있는 선택이다.

포기하는 것 vs. 물러날 때를 아는 것

언제 포기할 지 아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여행할 때는, 넘어질 때도 있고, 우리 자신이 다치게 되는 일도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좋아질 것이라고 두번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로의 위험을 피하고자 인도로 걸어간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불러오는 상황을 피하려 하지 않는 걸까? 이 단순한 질문에 답을 내는 것은, 의외로 매우 복잡하다.

애초에, 현실에서, 우리는 돌투성이이거나, 구멍투성이 인도로 걷는 일은 없다. 물론 이 은유는 너무 많이 남용되었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진짜 위험한 것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것, 혹은 우리가 가진 의도를 널리 알리지 않는다. 다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생물임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애정, 소유물, 사회의 교류, 자유시간, 섹스, 우정, 직장,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가 필요하다. 인간은 본성에 따라 격동적이다. 서로 소통하는 존재이다.

이 매우 인간적이면서 다양한 것들은, 우리를 미지의 세상으로 강제로 이끈다. 우리는 이 위험한 미지를 감수하며,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며, 새로운 일들을 겪으며, 가끔은 살아남기도 한다. 때때로, 우리는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도 한다. 왜냐면 우리의 뇌는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머나먼 관계의 사람과의 연결을 중시하며, 미지 너머의 지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에 담겨있는 하늘과 새

이 모든 것들이, 왜 우리가 우리의 선을 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는지, 설명해준다. 우리는, 이익보다 위험이 더 많은 일들이나, 아니면 우리의 마음이 적과 같이, “포기하지 마. 아깝잖아?”와 같은 말로 행동하는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에 뭔가 중요하면서도 단순한 것을 먼저 동화해야 한다: 우리가 뒤로 미뤄두는 것은, 우리를 불쾌하게 하며, 해롭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포기한 게 아니다. 우리는 살아남으려 하는 것이다!

당신의 ‘스위트 스팟’을 인지하는 방법을 배워보자

우리의 스위트 스팟을 찾는 것은, 마치 우리의 균형, 심리학적, 감정적 호메오스타시스를 찾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이 되는 것이 무엇일지, 항상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 능력이 직관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하자. 경험, 관찰, 성공과 실패로부터의 배움,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반영 등에 의한 객관적인 자기학습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신의 만족도가 낮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 -에피쿠로스

스위트 스팟은, 우리가 하는 것, 이루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고, 만족스러운 상황임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가 스트레스를 겪거나, 당황하거나, 두려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순간, 혹은 극히 지친 상황에서는, 우리는 ‘비터 스팟’에 진입하게 된다. 즉 우리가 불쾌한 상황이라, 가능한 한 빨리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지대

이 단순한 전략이, 우리의 삶의 어느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스위트 스팟을 찾는 것은, 삶의 지혜이다. 우리 자신의 삶에는 각기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끔 해주며,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안다는 것이, 포기하는 것과 결코 같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한계를 아는 것이니까.우리의 불행에서 행복을 분리하고, 쓴맛의 경험에서 기회를 분리해내는 것과 같다.

이 스위트 스팟을, 일상에 적용시켜, 삶의 질을 높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