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루즈벨트: 주목할 만한 영부인

2019-11-06
엘리너 루즈벨트는 어린 시절 수줍고 불안한 아이였지만, 가장 주목할 만하고 사랑받는 영부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또한 그녀는 뛰어난 작가였고 개혁가였다.

오늘 매우 주목할 만하고 놀라운 여성인 엘리너 루즈벨트 전 영부인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엘리너는 지난 세기의 많은 가장 중요한 사건들의 핵심 인물이었다. 외교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권 옹호자로서도 그렇다. 엘리너는 분명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시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카딸이었는데 나중에 그녀의 먼 사촌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와 결혼했다. 후에 남편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엘리너는 영부인이 되었다. 이 위치는 그녀가 여성 해방 운동과 보편적 인권에서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수행하는 발판이었다.

퍼스트레이디로서 그녀보다 앞 선 여성들은 단지 의례적인 임무를 가진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엘리너 루즈벨트는 그 자리에 자신만의 실체를 더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시민들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사실, 그러한 역할은 엘리너가 유엔에서 미국 대표로서 일한 후에 훨씬 더 많이 진행되었다. 그녀의 남편인 루즈벨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들어간 후에는 많은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엘리너 루즈벨트의 초기 시절

엘리너 루스벨트 - 엘리너 2

엘리너는 뉴욕시에서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저명한 미국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부 사람들은 엘리너가 10살 이전에 부모님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엘리너는 런던에 있는 사립 기숙학교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사람, 자신감을 심어주고 강인하고 카리스마 있는 젊은 여성이 되도록 도와준 선생을 만났다.

미국으로 돌아가, 엘리너는 5촌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와 계속 연락했는데 그 후 둘은 1905년에 결혼했다.

루즈벨트가 상원의원으로 지명된 후 부부는 알바니로 이사했다. 둘은 6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그 중 한 명을 어린 나이에 잃었다.

엘리너는 가족과 관련된 많은 의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문제에도 적극 관여했다. 그녀는 여러 단체의 일원이었는데 여성 유권자 연맹, 여성 무역 연합 연맹, 민주 국가 위원회 여성분과 위원장이었다.

게다가 가구공장을 경영하고 중학교 문학사 학장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적십자사와 협력하기도 했다.

영부인이 된 엘리너 루즈벨트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첫 등장은 1933년 남편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였다. 루즈벨트는 12년 동안 대통령을 지냈고 엘리너는 내내 영부인이었다.

공직은 고사하고 여성이 공직생활에서 거의 관련성이 없었던 시기에 다소 의지가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엘리너는 300개가 넘는 여성 언론인들을 위한 강의를 했고 모든 종류의 정치 행사에 참여했다.

여성의 권리에 찬성했던 사람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을 위해서이다.

“평화를 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엘리너 루즈벨트-

엘리노어는 가장 불리한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으며 자신이 쓴 기사를 통해 그것들을 홍보했다.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3000개 이상의 기사를 썼으며 여성 홈 컴패니언 월간 칼럼을 포함하여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도록 격려했다. 게다가 네 권의 책을 출판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엘리너는 민방위 문제를 담당했다.

게다가,  남편인 루즈벨트가 수천 명의 일본 이민자들을 구금하기로 결정한 것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중요한 유산을 남긴 엘리너 루즈벨트

루즈벨트 동상

엘리너의 남편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통령으로 4번째 임기를 지내는 동안 사망했다. 그래도 엘리너의 적극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엘리너는 공적인 생활에서 은퇴하는 대신 트루먼 대통령과 함께 유엔 주재 미국 대표로 활동했다. 사실 엘리너는 1948년 인권선언이라는 유엔의 위대한 업적을 쓰는 것을 도왔다.

엘리너의 영향력은 전세계의 모든 남녀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도왔던 많은 세계 국가들의 헌법에 존재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엘리너를 인권 업적에 대한 찬사로 ‘세계의 영부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게다가 존 F. 케네디는 그녀를 미국 여성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다. 엘리너는 모든 영부인에게 영감을 주는 커다란 유산을 남겼는데 바로 여성에게 정치 분야를 열어준 것이었다.

엘리너는 1962년 4월 23일 뉴욕에서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마음은 생각을 논하고, 평균적인 마음은 사건을 논하며, 작은 마음은 사람을 논한다.”

-엘리너 루즈벨트-

엘리너는 전세계 많은 여성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준다. 현재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와 싸우는 사람은 누구나 엘리너가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을 인정한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

엘리너 루즈벨트가 사망했을 때 숭배자들로부터 많은 칭찬의 글이 도배되었다. 그 중 한 명인 애들레이 스티븐슨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엘리너에 대해 “나는 사랑하는 친구 이상의 것을 잃었다. 영감을 잃었다.

그녀는 어둠을 저주하기보다는 촛불을 켜는 편이 낫고, 그녀의 광채가 세상을 따뜻하게 했다.”

그 인용문은 확실히 엘리너가 가진 성격과 힘을 정의한다. 엘리너 루즈벨트는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을 붙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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