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부메랑 효과, 또는 ‘행동 이론’에서는 ‘모든 원인에는 그 효과가 있고, 모든 효과에는 그 원인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긍정적인 생각, 감정, 그리고 행동이 유리하게 우리에게 되돌아 오는 이유이다. 이 값이 마이너스이면, 그만큼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타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그 수단이 행동이건, 생각이건, 다른 무엇이건, 우리는 자동적으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한 길을 닦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 잔의 물을 한 잔의 물과 교환하는 것은, 그저 상호주의의 법을 ‘충족시킬’ 뿐이다. 진정한 관대함은, 훨씬 가치 있는 행동을 되찾아야 생겨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모든 일은, 각기 우리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 그 열쇠는 우리의 선한 행동이 스스로를 먹여 살리도록 하는 것이며, 우리가 얻은 것 또는 과거에 얻은 것이 아니다.
좋은 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갖 상황에 처해도, 그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서 오는 에너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절대 돌아오는 에너지에서 받은 것이 아니다.
나쁜 일에도 친절로 답하라
그들은 한 사람이 큰 변화에 대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세계가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좀 더 환영받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취할 수있는 조치가 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대중적인 표현을 들었을 것이다. 즉, 우리는 누가 이득을 얻는지 상관없이,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 승인이나 비교가 필요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가 그 빛에서 선함을 볼 때, 선함은 존재의 사심 없는 길과 함께 간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보상을 받게 되는 원인이다.
다른 사람들의 나쁜 일들을 바라는 것은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분노와 불안감을 유발시킨다.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 지길 원한다면, 아무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나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악의를 느낀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준비가 필요하지만, 좋은 사람이되기 위해서는 평생을 준비해야 한다.” – 폴 브루랏
선과 악의 생각
인간 행동을 연구하고, 그것을 선 또는 악으로 분류하는 철학의 한 분야는, 바로 윤리이다. 윤리는 선을 행하는 것에 관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철학자가 선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윤리학에서 선은 바람직하며, 악은 선의 정반대이고,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적 상대주의는 선한 것에 대한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민족 중심주의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어떤 경우이건, 모두가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한 면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쁘게 여겨지는 행동들이 있다. 그 중 타인을 돕는 것이 친절의 가장 좋은 형태이며, 반대로 즐거움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해를 입히는 것이 악의 가장 사악한 형태이다.
타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선과 악의 논쟁은 윤리가 전쟁터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순전히 상대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정한 행동이 다른 행동보다 우수함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문화적 규범과 관련해서, 어떤 면에서나 더 나은 면에서 절대적으로 나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살인자나 테러리스트와 같은 극단적인 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선은 악을 능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파쿤도 카브랄의 말에 의하면, “폭탄은 애정표현보다 시끄럽지만, 우리를 파괴하는 모든 폭탄 하나만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수백만의 애정이 존재한다.”고 한다.
“당신은 비참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통의 근원이며, 가까이 있는 선을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을 알 것이다.” – 피타고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