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피쉬: 비유로서의 물고기

· 2018-05-15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빅 피쉬 (2003)는 상징과 은유가 풍부한 영화다. 우리가 보통 버튼 감독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사악한 장면들로 가득하지 않은 영화다. 사실 정 반대다: 빅 피쉬에는 색, 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 블룸의 삶과 그의 아들 윌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윌은 임신한 아내와 함께 파리에 살고 있다. 그와 그의 아버지는 몇년 전부터 사이가 안좋았고, 그들은 어머니 산드라를 통해서 소식을 주고 받는다.

어느 날, 산드라는 그녀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아버지가 심각하게 아프다고 전했고, 윌과 그의 아내는 그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갔다.

빅 피쉬 그리고 부자 관계

에드워드와 윌은 사실 옛날에는 친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관계가 나빠졌다. 에드워드는 거인, 마녀, 늑대 인간 등이 관련된 놀라운 이야기 작가로 유명하다. 윌 역시 그의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어른이 되면서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후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윌은 아버지가 진실을 말하도록 설득했지만, 에드워드는 본인의 이야기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심지어 아들이 그렇게 말해도, 그는 바뀔 생각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윌은 본인도 실제로 작가다. 그는 판타지 소설을 쓰기도 한다. 이처럼 둘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한명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한명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

“빙산의 일각은 단지 1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0퍼센트는 볼 수 없는 물 아래에 있다.”
-윌리엄 블룸, 빅 피쉬-

윌은 그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그를 믿지 않고. 자신이 어렸을 때 곁에 없었던 그 대신에 핑계를 대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이 겪은 경험 덕분에 윌은 마치 그의 아버지의 대체품이 된다. 에드워드의 삶은 끝나 가고 있고 또 다른 삶이 진행되고 있다. 아들에게 필요한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이다.

처음에 윌은 그의 아버지를 나쁘게 생각하고 비난한다. 그가 훌륭한 롤 모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의 일은 결코 쉽지 않으며 이제 윌도 아버지 노릇을 해야할 때가 찾아왔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 그는 그의 아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조금씩, 윌은 자신의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고, 이제 그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빅 피쉬에 등장하는 은유법

‘빅 피쉬’는 다양한 종류의 반전과 사건을 이용하고 결합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에드워드 블룸의 인생 이야기다. 그의 성 Bloom(피어나다)은 그 자체가 은유다. 에드워드가 꽃이 피어나듯,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는 태어나고, 그의 화려함의 절정에 이르고, 그 다음에는 조금씩, 그는 점점 더 성숙해진다.

이 영화에는 많은 은유들이 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물고기

에드워드의 어린 시절에 있어 물고기는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다. 물고기는 영화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통합하는 소재다. 그것은 에드워드를 의미한다. 그는 어렸을 때 주변 환경에 따라 크기가 변하는 물고기에 대해 읽었다. 몸집이 세 배까지 늘어난다.

에드워드는 그가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그의 한계가 어항임을 인지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항이라는 한계 속에서 이뤄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은유를 따르면, 어항에서 벗어난다면, 우리의 진로를 결정하고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다. 동시에 어항을 떠나는 것은 무섭다. 그 바깥 세상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근데 어항이 작다고는 생각 안 해봤어?”
-에드워드 블룸, 빅 피쉬-

이미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다면 두려움은 느낄 수 없다. 에드워드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유리 눈을 가진 마녀가 있다. 유리로 된 눈을 보면,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있게 된다. 에드워드는 그것을 보고, 그가 어떻게 죽을지 알고,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난 어차피 이렇게 죽지 않아.” 이 덕분에 에드워드는 역경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에드워드는 그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에게 같은, 바로 죽음이라는 운명을 말이다. 그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빅 피쉬 마녀 눈

애쉬튼

이것은 에드워드의 어항이다. 그가 태어난 마을. 그의 희망과 꿈을 가진 사람을 위한 작고 제한된 마을이다. 하지만 그는 이웃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고 어항 안에서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많은 장애물에 직면하지 않고도 이러한 일을 이뤄냈다.

어항은 우리의 안전 지대이다. 그것은 순응주의를 나타낸다. 이곳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떠나기가 힘들다. 그러나, 어항에서는 배움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그것이 에드워드가어항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이유이다.

스펙터

애쉬튼을 떠나 여행을 시작한 후, 그는 스펙터에 도달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일련의 장애물을 마주한다. 이곳은 모두가 맨발로 다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적인 마을이다.

그곳에서 그는 에시든의 전 거주자인 노터 윈슬로우를 찾는다. 윈슬로우는 에드워드처럼 위대한 일을 할 운명을 타고난 유명한 시인이었다. 그것이 그가 같은 여행을 한 이유이다.

하지만 노터는 다른 낚시 바늘에 걸려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다. 그는 결국 또 다른 어항에 갇혔다. 스펙터는 아름다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 하나의 안전 지대이다.

완벽한 마을

에드워드는 머물 계획이었지만 마음을 바꾸고 계속 이동한다. 그는 아직도 볼것이 많다. 시나리오 작가는 스펙터라는 이름을 막 선택한게 아니다. 사실 이는 유령과 공포라는 뜻을 지녔다. 그것은 스펙터가 어항과 마찬가지로 기만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강에는 물고기가 하나 있는데, 그 물고기의 모양은 그 물고기를 바라보는 개인의 욕구에 따라 변한다. 여기, 우리는 에드워드가 여자를 찾고 싶어한다는 욕망을 살펴볼 수 있다.

반지

물고기가 최대 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잡혀서는 안된다. 에드워드는 그의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거짓말을 피해야 한다. 그는 적어도 목표에 도달하고 교훈을 얻을 때까지 어항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낚시 바늘이 나타나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즉, 에드워드는 원하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그러한 바늘을 피해다녀야 한다. 에드워드가 말한 그 물고기는 그의 결혼 반지에 잡혀버린다.

에드워드의 낚시 바늘은 그의 아내 산드라였다. 하지만 그 상황까지 가기 위해서는 끝없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안전 지대를 떠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안전 지대에서 신발을 벗는다.

커플 빅 피쉬 꽃밭

신발

신발은 우리가 걸을 때 발을 보호해 준다. 우리가 집에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이 필요하지 않아요. Spectre에서는 모든 주민들이 맨발로 돌아다닌다. 그들은 계속해서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신발이 필요하지 않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는 그의 신발을 남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무방비 상태로 남아 있는다. 왜냐하면 그 순간 그는 공황 지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더 이상 신발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그들을 기다리게 할 수 있다.

빅 피쉬는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또 다른 시각을 보여 주는 현대적인 판타지 소설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안전 지대를 떠나고, 우리의 길을 개척한다면 각자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려운 길일수록 결국에는 더 보람차다.”

-에드워드 블룸, 빅 피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