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믿는 것이 다른 사람을 믿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부모나 선생님한테서 배운 것과는 반대되고, 가혹한 말로 들릴 수도 있다. 사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의지했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이유라도 있지만, 대개는 아무 이유 없이 실망하곤 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배반당했을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우리의 신뢰가, 뒤집을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이나, 혹은 뒷담화 등으로, 아니면 기타 다른 우리의 신뢰를 망가뜨리는 방법으로 깨져버렸다면, 실망감은 더더욱 크다.
우리는 아직 신뢰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우리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그만큼 아름답고, 또 합리적인 이유를 가진 사람에게 신뢰를 전하고,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필요하다면 알아야 한다. 당신의 눈과 귀를, 신뢰를 위해 열어두고, 새로운 발전을 위해 내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배신이란 쓰라린 경험이다. 나의 존엄성을 공격받은 것이고, 나의 정직함, 겸손함, 그리고 호감 등이 모조리 배반당한 것이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마음을 닫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일부는 심지어, 반사회적인 성격으로 변하여, 새로운 배신을 두려워하여, 고독을 선호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걸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주고, 그저 그 범위를 넓혀온 걸까? 아마 후자의 질문에 대답할 범위가 더 넓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전자의 경우가 우리에게 아프게 다가오는 걸까? 우리 스스로에게, 어쩌면 불합리한 일이 아닐까?
우리가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배척하고 외톨이가 되어야 하는 걸까? 나중에 맞이할 인연에도 이렇게 방어적으로 나서야 하는 걸까? 정말로 모두를 피해야 하는 걸까? 만일, 이렇게 나중에 우리에게 도움이 될 지 모르는 인연을 놓쳐버린다면? 이 위험을 떠안는 것은 너무 무모하지 않을까?
그러니, 일단 슬픔이 진정된다면, 슬픔이란 것이 피할 수 없고 겪어야만 한다면,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가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모험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자신감을 갖고, 정말로 가치 있는 사람들을 한번 맞이해보자.
물론 신뢰라는 것이 공짜는 아니다. 몇 년, 아니면 그 이상의 세월을 소모해서 얻는 대가이고, 좋은 인간 관계의 산물일 것이다. 우리의 가족, 친구, 동료, 상사, 자주 가는 식당의 주인 등, 아니면 사소하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등과의 인간 관계는 우리를 돌봐 줄 것이고, 욕구를 들어줄 것이며, 우리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도와줄 것이고, 우리가 웃을 때 같이 웃어줄 것이다.
세상을 매번 넓게 볼 수는 없다. 새로운 곳에는 그만큼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고, 고통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의 믿음을,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고 다시 한번 누군가에게 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