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고한 이후: 내면의 변화

2019-09-01
이별을 고한 후 우리의 내면은 조금씩 파괴된다. 내면의 파괴는 우리의 고의가 담긴 희망, 감정, 생각들에 의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그 순간, 우리의 내면은 다시는 옛날과 같아지지 않는다.

이별을 고한 후 우리의 내면은 조금씩 파괴된다. 내면의 파괴는 우리의 고의가 담긴 희망, 감정, 생각들에 의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그 순간, 우리의 내면은 다시는 옛날과 같아지지 않는다. 회복하지 않는다. 이는 고통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누군가에게 이별을 고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 순간 이후 그들은 늘 어떤 향수를, 무게를 느낄 것이다.

결국 이별이란 애도와 같다. 가끔 고통스러운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마치 불가능한 어떤 것에 매달 리고 싶어 한다. 이별을 고하면서 바뀐 우리 내면의 어떤 부분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별을 고한 후: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람은 변하며, 그 변화로 인해 그들이 세계를 보는 눈 또한 변한다. 비록 우리가 세상이 변치 않기를 바라더라도 이는 어쩔 수가 없다. 변화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그럴 준비가 되어있더라도, “놓아주는 것”의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한다.

이 생각은 중요한데, 이유는, 지금까지 많이 언급했듯, 욕구를 채우려는 욕심이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해한 관계를 형성하기 쉬워진다.

반면에 모든 작별은 씁쓸하지만 달콤한 면이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 쓰디쓴 순간을 느끼고 맛보는 것은 ‘달콤한 기회’가 된다. 그다음 단계에서 비로소 정신적 자유를 쟁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작별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 기회가 된다. 이는 특정 감정, 사람, 장소, 행동에 얽매인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이별을 고하다

과거의 정신적 기억으로부터 얻은 상처를 반드시 치유하라

“인생의 한 단계가 지났음을 인정하는 편이 좋다. 만약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 과거에 집착하면, 그 이후의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 뜻깊은 경험을 지나치게 된다. 언젠가 모든 문은 닫히고, 모든 챕터에는 엔딩이 있다…

이제는 영원히 과거에 머물 그 단계를 완성하고, 깔끔하게 놔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현재에 살면서 과거를 그리워할 수 없다. 이때, 왜 그러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미 지난 일은 지났으며 이제는 놔줘야 한다. 어떠한 유년기, 청년기, 생활 방식, 연인 관계도 영원할 수는 없다.

사건은 발생하고, 과거로 넘어간다. 이를 인정하자.”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삶의 새로운 단계를 시작하려면, 지나간 시간의 문을 닫아야 한다. 고통스럽고 복잡한 과거에 받은 상처를 꼭 치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은 그들의 현재, 심지어 미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과거의 상처를 계속 껴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작별이라는 정신적 낭떠러지 앞에서 혼란을 느끼는 일은 당연하다. 마치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볼 때 느끼는 그 아찔함처럼, 우리의 뇌는 진실로부터 눈을 돌린다.

하지만 이런 경우, 정신적 낭떠러지에서 이미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다시는 얻지 못할 것이더라도 정말 벗어났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즉, 믿기 위해서는 그 모습을 목격해야 한다. 내면의 무엇인가가 확실히 우리로부터 떼어 나와, 이제는 나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함께 있을 때야 즐거웠겠지만, 결국 삶이라는 여정에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을 붙잡는 짐이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꼭 작별을 고하고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모든 작별은 우리가 앞으로의 삶에서 얻을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제는 당신의 일부가 아닌 것들을 인정하고, 떨쳐내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라. 그때야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제대로 정의한 단어는 사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