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파경: 교훈 5 가지

· 2018-11-19

예기치 않은 파경. 이것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한쪽이 아직도 저쪽을 사랑하는 관계라면 더 고통이 크다. 사랑은 삶에 많은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고통도 가져다준다. 동전의 양면이다. 좋은 점만 가져가고 나쁜 점은 버릴 수 없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당신의 내면이 박살이 난다.

그런데, 세상에는 사랑, 관계, 애정적 유대에 대한 비이성적인 믿음을 제거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믿음은 대부분, 문화가 우리에게 주었던 그런 종류이다. 그런 믿음은 사랑이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결국은 부처의 말처럼 무지는 모든 심리적 고통의 근원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많은 사색가들과 정신적 스승들은 올바르게 생각하고 기분이 나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구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관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에 대하여 무지한가? 확실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럴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많은 것들을 더 잘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사랑 때문에 받는 고통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는다. 슬픈 사실이다. 상대방이 얼마나 완벽한지 말하고 있는 사람도 저 깊은 속에는 의구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관계의 미래에 대해서 이런 자그마한 두려움의 불씨를 모두 갖고 있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는다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거나 욕망을 덜 느끼거나 또는 예기치 않은 파경을 경험할 때, 누가 고통을 느끼지 않겠는가? 사랑보다 더 과민한 것은 없다. 사랑만큼 아름답고, 생명에 소중한 것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파경을 경험하는 것은 계획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죽고 싶은 느낌도 든다. 절망과 불신감이 휩싸고 돈다. 혼동이 되고 마비가 될 수밖에 없다. 공허함이 전신을 싸고돈다.

사랑을 합리화한다?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은 느끼고 즐기는 것이다. 사랑에는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진실이다. 감상적인 태도는 순진한 것 이상이다. 그것은 위험하다.

“상사병”의 원인 중 하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바로 그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인 믿음이다. 사랑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관계에서 생기는 고통의 가장 큰 원천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굳이 사랑을 합리화해야 할까? 정답은 ‘그렇다’ 이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우리를 멈추어 주는 선까지만 합리화하도록 하자. 사랑은 즐기는 어떤 것만은 아니다. 믿음과 가치 시스템의 일부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사랑을 정돈하고 규제하여 사랑이 뇌세포와 더 친밀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랑에게 날개를 자르는 대신에 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예기치 않은 파경의 교훈

사랑과 그 논리를 “이해”하면 비통함도 “이해”할 수가 있다. 파경을 일으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오는 것이 보이면, 파경에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않게 찾아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예기치 않은 파경에서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교훈들이 있다. 그런 것을 통해서 성장을 할 수 있다. 여기 몇 가지를 든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간단한 진리이다. 삶의 한 사실이다.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어떤 것은 빨리 끝나고, 어떤 것은 오래 간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이 나게 되어있다.

욕망의 결여, 목표의 상이함, 소통 문제 등으로 인하여 부부가 갈라설지도 모른다. 물론 평생 같이 사는 부부들도 있다. 하지만 한쪽이 사망하면 마법의 주문은 끝이 난다. 피할 길이 없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파트너에게 일어나는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고 한다. 파트너의 모든 것에 신경을 쓰면 파경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그런 게 아니다. 바꿀 수가 없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 파트너가 떠나고 싶으면, 어찌해도 떠난다.

파트너 없이 살 수 있다

파트너 없이 사는 것은 같이 사는 것같이 삶의 또 다른 옵션이다. 둘 다 타당한 옵션이다. 찬반양론이 있다. 파트너와 같이 사는 것에 많은 장점은 있지만, 파트너 없이 산다고 하여 잘못되었고 사랑을 영원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로 찾을 수가  있다. 당신의 행복이 누군가 다른 사람에 달려 있어서는 안 된다.

삶은 예측 불허이다 (혹은 적어도 생각 만큼은 예측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통제를 하는 느낌과 관련이 많다. 예기치 않은 파경을 겪을 때, 삶의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 함을 깨닫는다. 미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한 계획도 세워야 한다.

어떤 것도 마음에 보이는 것만큼 끔찍하지는 않다

사물을 올바른 관점에서 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좋다. 예기치 않은 파경을 겪는 것이 끔찍한가? 삶에서 정말 끔찍한 것은 무엇일까? 파트너가 떠나는 것은 끔찍하지 않다. 정말로 끔찍한 것은 불치병, 세계 전쟁, 사랑하는 이의 비극적인 죽음 등이다.

파트너가 떠나면 삶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삶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이 된다.  처음에는 정말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조금씩 상황이 저절로 정상화가 되고, 다시 위로 부상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