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전기 및 작품

20 12월, 2019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약 350편의 출판된 시들은 비평가와 독자 모두에게 항상 높이 평가되어왔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그녀는 폴란드 시인, 수필가이자 번역가였다. 그녀는 15권이 넘는 시를 썼으며 편집자 겸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에서 그녀가 겪은 놀라운 개인적, 지적 진화과정을 감상할 수 있다. 그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폴란드 점령이라는 과정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성이었다.

어린 나이에 비스와바는 독일의 폴란드 점령 하에서 비밀리에 공부해야 했다. 전쟁 후 이 여성 시인은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인생을 헤쳐나가면서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더 이상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초기 두 권의 책 이후, 비스와바는 더 이상 스탈린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녀의 삶은 문학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으로 번역한 폴란드어 작품들로 인해 유명했다.

젊은 시절의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심보르스카의 어린 시절

사실, 비스와바는 그녀의 중간 이름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비스와바 아나 심보르스카이며, 1923년 7월 2일 폴란드 서부 코니크의 일부인 프로벤트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날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 당시 거물이자 지주인 블라디슬라프 차모이스키 백작의 집사였다. 이 백작은 프로벤트 지역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지성이 독보이는 집안이었다. 가족들 모두 책을 많이 읽었으며 책에 대한 토론을 하곤 했다. 비스와바는 항상 아버지에게 그녀의 시를 보여주었고, 그의 아버지가 그녀의 시가 마음에 들 때면, 그녀에게 보상으로써 동전을 주곤 했다.

1931년 두 번째 이사 후, 비스와바는 크라쿠프에 있는 수도원 학교에 입학하지만 그곳에서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내고 독일의 폴란드 점령으로 인해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심보르스카에 미친 영향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1940년 독일 나치군은 폴란드를 점령했다. 이로 인해 폴란드 시민들은 공립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되었다. 비스와바는 바벨성 아래 지하 학교에서 공부를 지속했다.

20세기 동안 바벨성은 폴란드가 점령된 후에도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로 역할을 했다. 크라쿠프는 독일 내각의 본사가 되었으며 그 후 바벨은 독일 나치군의 수석 법률가 한스 프랭크의 거주지가 되었다.

지하에서 공부 한 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1941년에 고등학교 시험을 마쳤다.

1943년에 그녀는 철도 산업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독일로의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영어 교재를 위한 일러스트 작업을 가까스로 해왔고 글와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 비스와바는 야기엘론크 대학에 입학하여 폴란드 문학을 공부했다. 나중에, 그녀는 직업을 바꿔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1948년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흑백사진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문학의 시작

1945년 3월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지엔느닉 폴스키’라는 신문사에 그녀의 시 ‘단어를 찾아서(Szukam słowa)’를 출판하면서 데뷔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많은 시들이 다른 신문과 지역 언론사에 실리게 되었다.

1948 년에 학교를 그만둔 후, 그녀는 격주로 발간되는 교육 잡지사에서 비서로 일했다. 같은 시기에 그녀는 이 잡지사의 일러스트레이터로도 일했으며 시는 지속적으로 써 나갔다. 1949년 그녀는 첫 시집을 마쳤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 같이 심보르스카의 초기 작품은 그 당시의 폴란드를 나타내는 사회주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1952년 그녀의 첫 번째 시집인 ‘그래서 우리 모두 살아있다(Dlatego żyjemy)’에는 그녀의 정치적 견해를 반영하고 있는 ​​많은 시들을 실었다.

50년대에의 심보르스카는 폴란드 연합 노동자당의 일원이 되었다. 그녀의 1954년에 출간된 다음 시집 ‘스스로에게 질문하라(Pytania zadawane sobie)’에 그녀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담아냈다.

그러나 심보르스카는 공산주의 이념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1957년에 ‘예티에게 외치다(Wołanie do Yet)’를 세 번째 시집으로 출간하였고 그녀는 그녀의 각성과 그녀의 사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선언하였다. 이 시집은 공산주의, 특히 스탈린주의에 대한 그녀의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들에는 그녀의 인류에 대해 걱정이 담겨 있으며 심지어 스탈린과 예티에 대한 비교를 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을 취하게 되면서 그녀는 폴란드의 통합 노동당과 자신을 분리시켰다.

나의 창조적인 삶의 시작점부터 나는 인류를 사랑했다.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비스와바 심보스카-

그녀는 결국 그녀가 초기에 출간한 두 시집을 스스로 거부했다. 그녀는 그 시집들이야 말로 자신이 남은 평생 동안 비판하게 될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젊은 시절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작품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그녀의 생애를 통틀어 15개가 넘는 시집을 써냈다. 그러나 그녀는 유명한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리뷰와 프랑스 시의 번역 덕분에 비평가이자 번역가로 여겨지고 있다.

1968년부터 ‘필독 서적은 아닌 것(Lektury Nadobowiązkowe)’으로 불리는 책들을 리뷰할 때 자신의 칼럼을 시작했다. 이러한 수필들은 대부분 나중에 책으로 편집을 걸쳐 출판되었다.

1996년 그녀의 노벨 문학상 외에도 심보르스카는 많은 상을 받았다. 그중에는 폴란드 문화부상(1963), 괴테상(1991), 헤더상(1995), 폴란드 PEN 번역상(1996)이 있다. 1995년 그녀는 포즈난에있는 아담 미츠키에바츠 대학교에서 예술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하얀 독수리의 명’을 수상했다. 이는 폴란드 정부가 일반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명예라고 할 수 있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삶과 유산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1948년 시인 아담 블로데크와 결혼하게 된다. 크라쿠프의 크루프닉차 22번가에 있는 그들의 집은 당시 많은 작가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작가 체슬라프 밀로츠가 가장 눈에 띈다. 이 부부는 1954년에 이혼했지만 친한 친구로 남게 되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심보르스카는 15년 후 작가 코르넬 필리포빅츠와 깊은 관계에 빠졌지만 그들은 결코 결혼하지 않았으며 항상 따로 살았다.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것 따위는 없다고 말하도록 그냥 내버려 둬라. 그렇게 믿는 것이 그들이 살고 죽는 것을 수월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2012년 2월 1일 크라쿠프에 있는 집에서 자는 도중 평화롭게 사망하였다. 그녀는 88세의 나이였고 새로운 시를  작업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심보르스카의 시는 일부 학교들의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시인이 되었으며, 그녀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아랍어, 히브리어, 일본어 및 중국어와 같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삶과 유산

그녀가 남긴 시들이 얼마나 명확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는지에 주목할 만하다. 동시에, 그녀의 시적 작품은 아이러니한 거리감도 전해준다.

모든 시작은 결국 일어난 일의 연속이며, 사건의 책은 반 정도 진행된 채 항상 열려 있다.

-비스와바 심보스카-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던 시기의 폴란드 역사와 스탈린주의가 그녀의 시에 영향을 미쳤지만, 비스와바 심보스카는 심오한 깊이를 지닌 시인이었다. 그녀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많은 위대한 진리를 탐구했다. 그녀의 시는 그녀의 삶에서 보여진 많은 것들과 이런 것들이 그녀의 시처럼 어떻게 발전하고 하루하루 어떤 길을 선택해 왔는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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