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화나게 만드는 사람이 당신을 통제한다
“당신을 화나게 만드는 사람이 당신을 통제한다.”…생각해보자. 맞는 말 아닌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기대 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거나, 타인의 행동이나 발언이 우리를 신경쓰게 만든다면, 우리는 보통 “넌 날 화나게 만들어”, “내게 상처를 줬어”, “진짜 짜증난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곤 한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는 즉 “내가 이런 이유는 너 탓이야”, “넌 내게 위협적이야”처럼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화가 나는 것이 타인의 잘못이란 의미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를 화나게 만든다면, 이것은 우리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군가가 나를 화나게 할 때, 우리의 내면에서는“나에 대한 네 의견이 나의 의견보다 더 중요해”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 우리의 감정의 원인은 타인에게 있다. 스스로의 감정들을 내면으로부터 통제하고, 책임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그 권한을 넘겨주는 것이다.
물론 분노, 짜증이 가져오는 무게를 홀로 견디기는 힘들 것이다…특히 외부에 신경을 쓰는 성격이라면 더더욱. 우리의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본인이 아닌 연인, 혹은 타인에게 돌리는 일은 더 편하게 느껴진다…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스스로의 진짜 감정에 도달할 수 없다.
가끔 이런 일들은 우리의 자존심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가 자존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생각, 감정, 행동을 더 책임감 있게 할 것이다.
타인이 호의인 척 베푸는 행동들이 우리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이러한 제스처를 받아들인다면 이제 그들의 호의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하지만, 거절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어쨌든 결정은 우리의 몫이다.
타인의 모욕감, 도발, 행동들은 우리가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영역 내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결정에 대한 결과를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고, 책임을 져야한다.
기대치가 높았다면 예상했던 바와 상황이 다르게 흘러갈 때 오히려 성가실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이나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대답을 통제할 순 있다. 따라서 타인에게 받는 행동, 듣는 말은 바꿀 수 없지만, 당연히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책임감은 무거운 존재다. 하지만 책임감으로 인해 우리는 삶의 통제자가 된다. 본인의 감정을 알고 잘 다스리게 된다면 삶에 대한 태도와 스스로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다.
“’내가 통제자다’, ‘나는 나의 삶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두렵게도 만든다.”
-Carl Rog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