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를 통해 힘든 시간을 극복하기

08 11월, 2018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유머는 스트레스가 많거나 힘든 상황에서 방어 기제로 자주 사용될 수 있다. 유머는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고, 힘들지만 잠시 나마 미소를 띄울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것은 전염성이 강하다. 완벽한 치유 방법 같지 않은가? 유머를 통해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방어 기제란 우리가 내부 또는 외부적으로 불쾌한 상황을 마주할 때 사용하는 마음의 보호 기술이다. 이것은 “나쁜” 괴물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 이 나쁜 괴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실연으로 인한 분노, 또는 큰 병을 진단받은 충격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의 방어 기제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것을 축소하거나 해롭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보호한다. 두렵거나 미지의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어 기제는 우리의 고통을 경감시켜준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도움의 존재를 잊게 만들기도 한다.

이럴 때, 유머가 가져다 주는 잠깐의 상쾌한 공기는 그 역할이 매우 크다. 잠시라도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은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해준다.

불편한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유머

심각하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유머를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게 웃음 짓게 만드는 사소한 유머는 결국 큰 웃음을 터트린다.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일 것이다. 유머를 사용하며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며, 당신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심각한/중요한 이야기를 저렇게 유머를 섞어가며 하는 것일까?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면,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절대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미소가 진실 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웃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힘든 영혼의 외침일 수도 있다. 진심으로 행복한 웃음이 아닌, 행복한 웃음을 지어 그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는 노력 같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힘든 상황을 잠시라도 잊어보려는 노력과 같은 것이다.

유머를 통해 힘든 시간을 극복하자

대부분 말하는 내용과 그 말을 하는 방식을 따로 떼어서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그 사람이 말하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의 문제를 너무 심각하지 않게, 웃으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웃고 있었던 걸 보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겠지!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틀린 짐작이다. 말의 내용이 그들이 표현하는 방식과 모순된다면, 그것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의미이다.

누군가에게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불편함

이때가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방어 기제로써 유머가 사용되는 지점이다. 유머는 상황을 가볍게 만들고, 대부분의 사회적인 상황에서 우리의 상황을 적절한 수위로 조절해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상황을 마주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때이다. 문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부정하려 노력한다.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문제이다.

진심으로 욕이 나오는 현실들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엄청난 내면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상황들이 있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이 그것을 부인하는 것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상황을 축소시켜 생각한다. 사소한 일이라고 억지로 생각해,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부인한다. 불편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로부터 도망친다는 의미이다. 

불편함과 편안함은 모두 인생의 일부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도망칠 수 없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거부한다고, “치유”가 될 수는 없다. 치유는 일단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무언가를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스스로의 내면을 잘 살펴야 한다.

그 안에서 발견한 것들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시작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 그저 왜곡하고 무시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존중 역시 받지 못한다.

스스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 역시 심각하게 생각해주지 않는다

타인의 존중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스스로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 진정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유머를 사용한다면, 타인은 우리의 가장 진실한 감정을 알 수 없다. 타인에게 웃을 수 있고, 전혀 심각하지 않은 척 꾸며진 모습 만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진실은 심각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전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것은 우리를 매우 괴롭히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불편한 감정. 그래서 웃음 또는 유머로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 수 없다.

“모든 것에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 모든 상황에 그 원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웃음은 적절한 타이밍이 있고, 눈물 또한 그러하다. 웃음에는 어울리는 타이밍이 있고, 엄격함 또한 그에 맞는 타이밍이 있다.”

알자히즈 Al-Jahiz

유머3

이것이 바로 타인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모순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야기의 내용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사이에 괴리감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가진 불편함을 도와줄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면을 쓰고, 가볍게 내뱉는 방어 기제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진실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 사람은 어쩌면 아무런 판단 없이 그저 들어줄 사람을 원할 수도 있다. 그들은 그저 “당신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이 원한다면 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께요.” 이 말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