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쓰리 빌보드’: 고통 속 분노

2019-09-16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는 고통 속 분노와 절박함에 관한 강력한 영화이다.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는 고통 속 분노와 절박함에 관한 강력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어머니의 고통을 가리킨다. 밀드레드 헤이즈는 딸이 강간당하고 살해된 후 경찰의 무능을 알리기 위해 마을에 광고판 세 개를 세운다. 하지만 이웃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기는커녕 이웃들은 밀드레드의 광고판이 껄끄럽기만 하다.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몇 달 전 오스카 시상식을 열었다. 수상을 점치는 온갖 내기와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쓰리 빌보드가 작품상을 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해야 침착해지고, 침착해져야 사고를 하게 되기 때문이야. 때로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사물을 감지하는 사고력이야, 제이슨.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게 전부야. 총도 필요 없어. 확실히 증오도 필요 없고. 증오로는 아무것도 해결 못 해. 침착함이 문제를 해결하지. 사고력도 그렇고. 변화를 위해 한번 시도해 봐.”

-쓰리 빌보드, 윌러비–

앞서 말했듯 절박한 어머니가 세운 세 개의 빨간 광고판은 지역사회의 심기를 거스른다. 사실 이 영화 자체가 미국 전역의 모든 사람을 거북하게 만든다.

한 가지를 꼽자면 영화의 무대가 되는 곳은 미국 한가운데 있는 미주리주의 작은 마을이다. 여기에는 미묘하지만 우연찮은 은유가 들어있다.

거북한 영화

이런 모호한 배경 속에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겉보기에 정상인 듯한 세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어떤 사람들에게는 법망을 빠져나가기가 얼마나 쉬운지, 어떻게 폭력이 언어 자체인지 보여준다. 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거리낌 없이 고문을 하는 경찰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성별에 따른 규범 속에서, 모른 척하기로 하고 도와주지 않는 이웃들에게서, 등장인물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상처 입고 분노를 통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영화의 블랙 유머 속에서 볼 수 있다.

쓰리 빌보드는 편한 영화가 아니다. 정의를 찾으려는 여성의 격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이상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더 가혹하고 씁쓸하지만, 여느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변화가 있다. 이는 가장 어렵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비치는 햇살 같은 희망 덕분이다.

Frances McDormand in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쓰리 빌보드, 고통 속 분노를 반영한 영화

아이를 잃는 것만큼 절망스러운 일은 없다. 하지만 폭력, 살인, 강간 등으로 아이를 잃는 경우 그 고통은 더 심할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이런 사연을 하나 이상 알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바로 이런  뉴스가 스페인을 온통 도배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 없이 밀드레드에게 감정이입 하는 것이다.

밀드레드의 수상한 외모와 분노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밀드레드가 십 대 딸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답을 기다리며 7달을 보낸 것을 알면 이 모든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밀드레드의 행동이 우리를 정말로 거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측불가능하고, 말투는 혐오와 경멸로 가득하며,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하지만  밀드레드는 영화의 감정적 중심이다. 밀드레드가 극단적으로 폭력적으로 돌변하더라도 그 이유에 대해 공감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무력함과 취약함에 분노로 대응하는 밀드레드 헤이즈 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사랑에서 비롯된 분노, 비명을 지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런 분노의 화신 같다.

밀드레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광고판 세 개를 통해서 자신의 좌절감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언가 결과를 얻게 될 거라고 기대할 뿐이다.

Frances McDormand and Woody Harrelson.

변화시키는 사랑의 종류

사람들은 쓰리 빌보드의 감독, 마틴 맥도나를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무지, 결손 가정, 폭력 경찰, 삶의 목적이 없는 사람들, 성폭력, 여성 혐오 등등 고정관념에 기초한 미국 남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영국-아일랜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사물의 표면적인 것만 보고 미국 남부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비판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쓰리 빌보드를 뛰어난 영화로 만들어 준 포인트는 많이 놓치게 된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똑같이 끔찍한 폭력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선함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에 몇몇 등장인물을 미워하기는 매우 쉽다.

하지만 선이 모호해지면서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이들이 새롭고 희망찬 사람들로 변화하는 데 놀라게 된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영화

이 영화는 인간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주요 줄거리는 껄끄럽다(딸의 사건에 대해 무능력한 경찰에 목소리를 높이는 어머니).

하지만 코미디와 우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사랑에 대한 고무적인 메시지 역시 영화에 들어있다.

부조리와 심각함이 혼합되어 감정이 진정한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든다. 계속해서 미움을 사지만 여전히 관객을 사로잡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이 이상한 배경 속의 모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쓰리 빌보드

쓰리 빌보드: 결론

이 글을 마치기 전에 쓰리 빌보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아님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런데도 불구 슬플 정도로 낯익은 줄거리이다.

영화는 아이를 잃고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상징과 카타르시스로 가득하다. 이미 자신들을 버린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더 공허한 삶을 사는 사람들 말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는 우리의 양심과 같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