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남성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스트의 외침
델마와 루이스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우리의 시선을 끄는, 잊히지 않는 영원한 장면을 선사해준 영화 중 하나이다. 우리는 왜 델마와 루이스를 좋아할까? 이제부터 좀 더 상업적인 영화, 좀 더 ‘할리우드’ 영화, 특히 지난 100년 동안 만들어진 영화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가? 여성이 주요 배역을 맡은 영화 중 바로 머리속에 떠오르는 영화가 몇 편이나 있는가? 무엇보다, 주요 배역을 맡은 여성 중 남자의 상대 역할이거나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닌 영화가 몇 편이나 있었는가?
아마도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영화의 수는 매우 적을 것이다. 남성 중심 세상에서 지배적인 남성과 순종적인 여성의 이야기가 로맨틱하게 또는 모성애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이야기 속에서 부각되는 특별한 영화 하나가 있다: 델마와 루이스이다. 이것은 함성과 같고, 충격적인 영화였다. 강하고 지배적인 남성상이 더욱 강조되어 가는 영화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영화였다.
이것이 역사상 가장 페미니즘이 강한 영화도, 가장 감동적인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외침이고, 여성 자유의 찬가이며, 평등을 이야기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근간에 첫 충격을 남긴 영화였다. 상업적인 영화들은 언제나 매우 열등한 존재인 여성이 살아가는 남성의 세계를 그려왔다. 또한,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영화감독이라는 업종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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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류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남성 (리들리 스콧) 감독, 여성 작가 (캘리 쿠리), 두 여자 배우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이다. 북미 영화가 가장 부흥했던 시절이었던, 1991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 부흥의 시대에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델마와 루이스는 이 전통을 깨뜨렸다. 원칙을 깨고, 여성의 목소리를 유도했고, 순종과 통제권의 거품을 무너뜨렸다. 여성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진정한 여성 로드 무비로써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데릴 없이 도시를 벗어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가 왜 너를 떠나도록 내버려 뒀는지 알아? 내가 묻지 않았으니까.”
-델마와 루이스-
주인공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전혀 내용을 모른다면, 이 글은 다소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주요 인물, 주인공의 진화이다.
두 주인공 모두 남부 출신으로, 여성의 역할이 집안에만 한정되어 있는 완벽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우정은 이들이 이상한 모험을 함께 떠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함께, 이들은 정신적으로 변화해간다. 미국 남부의 끝없는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이들은 변화해간다.
- 델마. 30살의 여성으로, 옷차림과 돈을 비롯한 부인의 모든 것을 다 남편이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완벽한 마초 남편인 데릴에게 매우 지쳐있다. 데릴은 가장이고, 가정의 경제를 책임진다. 델마는 가정주부고, 데릴에게 고분고분하다. 그녀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교육 받았고, 인생의 목표가 결혼이라고 믿으며 성장했다. 데릴에게 지쳤지만, 절대로 그에게 맞서지 않는다.
- 루이스. 루이스는 종업원으로 일하며, 지미라는 음악가와 불확실한 관계이다. 지미는 집에 잘 머무르지 않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다. 루이스는 좀 더 순진한 델마보다 훨씬 더 결단력이 강하다.
이들은 주말을 맞아 일상 탈출을 결심한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여행을 떠나, 자신을 구속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루이스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훨씬 더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델마는 여전히 꽤 순종적이고 순진하다. 그리고, 아무런 의심 없이 사람을 너무 많이 믿는다.
이 여정은 갑자기, 매우 급진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이들은 여성에게 가장 잔인하고, 남성 지배가 보여주는 가장 끔찍한 형태의 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강간을 당하는 것이다. 루이스는 이미 알고 있었던 형태의 폭력이었고, 이것은 그녀를 가장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 순간부터, 이들의 여정은 매우 달라진다. 휴식과 일상의 속박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던 여행은, 자아 각성의 여정이 된다. 남성 사회의 속박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풍경은 더는 목가적이지 않고, 이들의 의상 또한 ‘전형적 여성’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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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 가부장적 사회에 맞서는 반란자
강간의 피해자가 된 여성에게 어떤 약속을 해줄 수 있을까? 델마와 루이스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남자를 살해한 결과는 무엇일까? 만약 자유를 빼앗겨야 한다면, 그들이 살아갈 이유는 무엇일까? 델마와 루이스는 경찰에게 사건의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자신들을 믿어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가부장적 사회를 벗어나,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순종적인 여성에서 두 명의 도망자, 반란자,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되었다. 서로에게 대한 믿음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스크린 너머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여성들은 한 명의 남자를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이들은 공범이고, 주인공이다. 동시에, 이들은 언제나 남자 주인공의 역할이었던 이야기 속 “폭력배”가 되었다. “나쁜 남자들”로만 가득한 리스트 속에 나쁜 여성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사회에 지치고, 언제나 나중인 자신들의 위치에 지쳤다. 무엇보다 자유를 욕망하는 델마와 루이스는 불공정한 체제를 상대로 그들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들을 비난하는 체제, 비난하지 않지만, 이들을 피해자 또는 그보다 못한 존재로 규정하는 체제를 상대로 싸우기로 한 것이다.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만성 우월주의적 관점과 비평의 중심에 있었다. 영화뿐 아니라, 이 영화가 영화계에 끼친 영향의 관점에서도 그러했다. 극작가 캘리 쿠리는 이 작품을 영화로 제작하려고 할 때마다 “안돼”라는 거절의 말을 들었다 (그녀가 이 작품을 제작하려 할 때, 항상 반복되던 일이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한 번은 가부장 제도의 강력함을 느껴봤다. 우리는 모두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쾌한 상황을 겪어 봤을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영화 델마와 루이스 이후 무언가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여성이 주도하는 영화들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고, 언제나 남성의 역할이었던 것이 여성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대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되는 영감
이 고속도로 여행, 학대, 그리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어둠으로 향하는 그들의 이동은 우리에게 자유를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하라고 말한다. 영화는 너무 자주 남자다움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죄를 저질러 왔다. 위험한 것은 그런 영화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가 되며,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깨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세상에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우정, 불복종, 자유 아니면 죽음. 이것이 바로 델마와 루이스가 말하는 것이다. 그 본질은 절대로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말과 글들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어, 이런 거야: 투옥, 신체검사, 전기 충격 사형, 종신형, 이런 것들… 그리고 “내가 살아서 나오고 싶은가?”라는 생각..”
-델마와 루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