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은 아이

· 2017-06-29

이상적으로, 아이라는 존재는 부모가 자신들을 원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몸을 통해서 세상으로 나온다. 하지만, 많은 상황에서 이상적으로 일이 이어지진 않는다. 수많은 임신이, 무계획으로, 그리고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다.

그 결과는? 많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잃은 채 자신들의 삶을 시작한다.

낙태는, 오늘날에도, 사회에서 여러 이유로 거부받는 개념이다.

이 경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회적이고 도덕적인의무로 여겨지며, 애정이나 열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의 결말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동일한 열망과 해석

일부 부모들이 자신들의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임신이 위의 요건에서 일어난 것일 경우, 2가지의 대안이 존재한다:

부모가 자신들의 아이에 대한 거부를 억누르지 못했거나; 새로운 흥분한 감정에서 비롯된 욕망을 만들고, 자신들의 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 것이다.

만일 엄마나 아빠, 아니면 둘 다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부모는 당연히 아이를 버리려 할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지금의 상황을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이해하려 하거나.

이 경우, 아이는 부모가 키우건 아니건, 부모에게 그저 방해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경우, 가장 흔하게, 아이들은 대개 애정결핍 상태로 자라나게 된다.

억누른 감정은 항상 당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당신이 다른 감정의 가면으로 덮으려 해도 소용없다. 이것이 원하지 않은 아이를 지닌 부모가 크게 질투심을 품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손끝 하나도 닿길 원하지 않는다.

부모는 원하지 않는 아이를, 쉽게 파괴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매우 얇고 연약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아이가 찾아와서, 부모는 아이들과 거의 시간을 같이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놀이는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불편하고 긴장되는 존재일 뿐. “아무 할 말도 없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결과

이 감정들에 의한 부모와의 거리감은 아이에게 큰 흔적을 남기게 된다. “뭔가가 부족해”라는 내면의 마음을 심어주고, 항상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 답을 찾을 말은 잘 알지 못한다.

원하지 않는 아이로 인식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랑이란 개념 자체가 낯선 외국어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사랑을 변환하여,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원하게 하기가, 자신이 원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애정어린 인간관계 자체가 매우 괴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친밀감’이라는 개념에 대한 방어기제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열등감과 이기주의 사이에서 오가던 아이는, 건강한 자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애정결핍을 겪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최대한 피하고, 최대한 사람들을 피하는 이유이다. 자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때부터 이어졌던, 망가진 인간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말할 뿐이다.

이런 불우한 환경을 가진 사람들 가진 사람은 이 사랑이란 이름의 심연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방법은, 자신의 불편함이, 자신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저 주변 상황이 좋지 않았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기억하라: 부모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늦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