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소이치로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

2019-05-19

많은 사람들이 혼다 소이치로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를 통틀어 자동차 브랜드 ‘혼다’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혼다 소이치로는 이 유명한 회사의 창립자이다. 혼다 소이치로의 스토리는 사업가로서의 어려움과 힘든 여정을 극복한 놀라운 과정을 보여준다.

혼다 소이치로의 고향은 ‘코묘’ 라는 작은 지방이며 가난한 일반 가정에서 태어났다. 20세기가 막 시작될 때쯤이었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자동차라는 물건이 처음으로 그가 사는 마을에 오게 되었다. 그것은 포드였다. 이 광경은 그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이 거대한 기계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때가 바로 자신의 차를 만드는 꿈을 꾸기 시작한 날이다.

“당신의 강한 손으로 돛을 올려라’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말 그대로 당신이 최선의 준비가 되어있을 때 인생에서 일어나는 기회를 따라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 혼다 소이치로  –

15세의 나이에 혼다 소이치로는 도쿄로 이주하여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상사와 잘 지냈고 첫날부터 일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장 매니저는 주변에 쓸모없어져 돌아다니는 비행기 부품으로 경주용 차를 만들자고 그에게 제안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혼다 소이치로

혼다 소이치로의 전설의 시작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혼다 소이치로가 가장 원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상사가 이런 제안을 했을 때 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산업 기술과 수작업을 결합하여 그는 첫 번째 모델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그는 대부분의 부품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 쐐기를 사용해 나무 바퀴에 조각했다.

그것이 바로 ‘커티스’ 모델이다.  즉시 경주에 내보낼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차였다. 심지어 1924년에 실제로 일본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게 된다. 그 당시, 혼다 소이치로는 18세 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인내와 열정에 차 있는 기계공이 아닌, 자동차 경주 선수에도 도전하였다. 이 분야에서도 그는 큰 두각을 나타낸다. 그는 자신의 차를 최대 120km/hr까지 주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는 일본에서 20년 동안 기록으로 남았다.

혼다 소이치로의 ‘인내의 길’

혼다 소이치로가 21세일 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그는 6년간 공장 직원으로 일했기에 이제 다음 단계를 밟을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그는 자신의 회사인 ‘도카이 정밀기계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 회사는 자동차 부품, 특히 피스톤 링 제조를 하는 업체이다.

이런 자동차 부품을 디자인 하는 것은 그에게 큰 손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는 우수한 품질로 제작 및 유지 관리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했다. 품질이 너무 좋은 나머지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고객이 될 정도였다. 수년 동안 그가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혼다 소이치로는 어렸을 때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다. 지식으로 창의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선생들은 발명가가 될 수있을 거라고 항상 말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성장의 한 방법으로 교육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마마쓰 공과 대학에 입학했지만 결국 퇴학당하게 된다. 그는 졸업 시험을 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보았고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혼다 소이치로

생존자

혼다 소이치로는 중국과 일본 간의 세계 대전과 군사적 갈등을 직접 경험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나라는 완전히 황폐해지고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혼다는 전쟁으로 인해 지금까지 세웠던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1년이라는 자기 시간을 갖기로 결심한다. 그는 집에 위스키 양조장을 지어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서 술을 빚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시간을 그가 아주 영리하게 썼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1년이란 시간 이후 그는 성공의 길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혼다 소이치로

혼다 소이치로는 1946년 혼다 기술 연구소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일본에서 자동차 판매 에이전시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맞는 저렴하고 유용성을 띤 오토바이 제조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옳았다. 그는 다른 엔진보다 훨씬 소음이 덜한 가벼운 엔진을 만들 수 있었다. 이로써 그의 성공은 힘을 얻는다.

1973년 혼다 소이치로는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둔다. 그리고 그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인 ‘혼다 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그 이후로 그는 모든 노력과 헌신을 이 일에 쏟게 된다. 그는 1991년 8월에 사망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토바이 제조업자’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