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으로 인한 ​기이한 날들

2019-11-04
흑사병은 중세 유럽 인구의 30~60% 정도를 사망시켰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전례없는 전염병이었다.

어느 날, 오염이 된 한 화물이 10만 명이 거주하는 상업적으로 중요한 한 항구 도시에 도착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 유행병으로 인해 매일 300명이 죽어갔다. 결국, 그 지역의 사람들 10%가 사망했다. 이것이 바로 흑사병으로 알려진 그 질병이다.

이 전염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남자, 여자, 어린이, 노인, 농부와 공예가, 사제, 기사 할 것 없이 모두 사망하게 되었다. 이로부터의 탈출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건 좀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1348년 발렌시아에서 아라곤 왕관은 이를 흑사병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보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해보자. 이 글에서는 흑사병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것의 발달과정 및 영향력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자.

흑사병으로 인한 ​기이한 날들

흑사병으로 병든 유럽

14세기 중반, 흑사병이 유럽에 찾아왔으며 역사상 최악의 인구학적 재앙 중 하나가 되었다.

유럽 주민의 대부분에게 이 질병은 새로운 것이었고, 그들은 이를 몇 세기 동안 겪어야 했으며, 몇 세기 동안 이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이후에는 그렇게 까지 심각하지 않았다. 흑사병은 나병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했다.

역사 학자들이 확신하고 있는 흑사병이 유럽에 들어오게 된 경로가 있다. 바로, 크림 반도의 16세기경 사용하던 견직물(Caffa)을 통해서이다.

몽골 군대는 도시를 포위하고 칼보다 더 위협적인 것으로 공격했다.

몽골 사람들 그들 스스로가 성벽을 가로질러 감염된 시체를 던졌다고 말했다.

사실, 흑사병에 대해 몽골에만 한정시켜 말할 수는 없다. 도시의 성벽이 쥐나 벼룩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이런 비상사태가 벌어진 후 제노바 상인들은 이탈리아로 돌아갔지만 이미 늦었다. 지중해는 이제 이 질병의 다리 역할을 했고 1년 후에 서양은 비극을 맞이하였다.

모든 길은 흑사병으로 이끌었다

한 동안 사람들은 흑사병이 공기 중으로 퍼진다고 생각했다. 썩은 시체의 냄새와 그리스 약과 점성술과 같은 미신은 모두 그 방향으로만 생각했다. 이 질병이 그렇게 까지 빠르게 확산된 원인에는 쥐와 벼룩이 유력했다. 감염 2주 후에는 아무 증상이 없다가 5일 후에는 죽음이 들이닥쳤다.

모든 항구 또는 감염된 도시에서 새로운 발발이 발생했다. 전염된 도시들에서 도망 나온 사람들은 전염병을 시골로 옮겼으며, 이런 지역의 인구수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요 무역로와 순례자 길은 흑사병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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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직면하여

요즘 역사가들은 이를 흑사병이라고 믿지만 에볼라나 폐 탄저병과 같은 다른 전염병도 이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 증상은 이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흑사병의 증상인 검은 반점, 기침, 망상, 염증을 보이면 죽음이 임박해왔다는 경고의 신호였다. 동물이나 공기 중 전염 외 혈액도 정말 위험했다. 의사는 질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이 인구학적 위기는 기근, 고아 또는 농작물 손실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흑사병의 직접적인 사망과 이 질병과 관련이 없는 사망을 분리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흑사병 후 무슨 일이 있었을까?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또는 스페인의 인적 손실은 인구의 50% 또는 60% 정도로 높았으며 특정 지역에서는 그 수치가 더 높았다. 카스티유의 알폰소 11세는 그가 지브롤터를 막 포위했을 때, 이 질병의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질병은 백년전쟁을 휴전으로 이끌었다.

흑사병 후에도 여전히 혼란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유대인들은 희생양으로 사용되었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독을 먹인 것이라고 비난받았다. 폭도들도 그들을 공격하곤 했다. 퇴폐적인 사회에서 관습 주의는 쓸모가 없었다. 흑사병 시대에는 다른 악행들 중 매춘이 더 많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는 더 절망적인 형태의 ‘카르페 디엠‘과 같은 것이었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표준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죽음이 닥쳐오기 전에 죄가 사해지길 바랬다.

흑사병과 사람들

흥미롭게도,  이 사건의 경제적 결과로는 많은 자유지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질병으로부터 살아남은 많은 농부들이 이런 땅에 접근성을 갖게 되었다.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사회의 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을 위한 선물이 된 것이다. 흑사병 이후 유럽 사회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 Benedictow, Ole (2011) La Peste Negra (1346-1353). La historia completa, Akal.
  • Martin, Sean (2011) The Black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