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들을 완벽한 여인이 아닌, 용감한 여인으로 키우면 어떨까?
여자 아이들을 완벽한 여인이 아닌, 용감한 여인으로 키우면 어떨까? 우리가 공원이나 책상에서 보는 여자는 우리의 미래다. 하지만 이들 역시 당당한 사회 구성원 중 하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게 ‘완벽한 여성상’을 강요하며 유년기를 망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여성은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어 집을 돌보고, 세상을 살아가고, 직장에서 잘 나가고, 감정을 조절하고, 실패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완벽한 여성이 되도록 강요받는다.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가? 그들 본인은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봐라.
“삶은 유년기의 연속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유년기는 완벽한 여성성을 위한 과정이 아니다
유년기는 완벽한 여성이 되기위한 과정이 아니다. 물론 누구나 자기 자식이 완벽한 사람이 되어 완벽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좋은 선생님을 붙여서 교육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 부모들이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어른은 아이들의 말을 크게 귀담아듣지 않는다. 어른들은 온갖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만, 정작 가족과는 소통하지 않는 듯하다.
물론 아이들이 모든 결정을 내려야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뺏어버린다면 적어도 아이들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들어봐야한다.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준다면, 그에 대한 책임감도 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아이들이 맘대로 하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방향을 항해하고, 본인 의지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한다. 이는 부모님의 엄격한 정도와는 상관 없는 주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라. 살다보면 분명히 역경에 부딪힐텐데, 용감한 사람 역시 두려움을 느끼지만, 보다 더 이성적으로 해결할 것임을 일러줘라. 이런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문제가 점점 작아질 때까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나와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듯하다.”
-그레이엄 그린-
완벽한 여성은 없지만, 용감한 여성은 있다
완벽함은 없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두려움이 커진다는 사실을 가르쳐라: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도에 포기하는 것보다 덜 잃는다. 또 어떤 목표는 성취할 가치조차 없을 수 있음을 일러줘라. 만약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한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뭔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곰곰히 생각하고, 비록 남이 제안한 의견이라도 옳다고 생각하면 일단 시행했다가 결과를 검토하도록 가르쳐라. 나약함은 약점이 아님을 알려주자. 나약함을 드러내기 싫어 장벽을 치면, 사람들로부터 멀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들을 완벽한 여인이 아닌, 용감한 여인으로 키우면 어떨까?
아이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음을 알려줘라. 폭력적인 애인과 얼마든지 헤어지고,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꼭 도와주고, 의심스러운 사람은 거리를 둘 용기를 불어넣어라. 또한 자유가 혼란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차피 쓸모 없는 사람임을 알려줘라.
용기가 있으면 가치있는 사람이 된다고 가르쳐라. 왜냐하면 과정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우리가 죽거나 살 때 일어난다…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난 ‘과정’은 잠재력이 막강하고, 행복은 가치있는 사람에게 찾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