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의 고통, 매우 인간적인 일

침묵 속의 고통, 매우 인간적인 일

마지막 업데이트: 03 1월, 2018

많은 사람들이, 이하와 같은 행동들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껍데기 속에 숨어, 혼자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있는다. 우리는 겉으로는 용감한 얼굴을 하지만, 실제로는 침묵 속의 끝없는 투쟁을 겪으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려 한다. 우리가 실제로 이를 겪게 될 때까지, 우리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우리의 껍데기가 부서져버릴 때까지 우리는 이를 반복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고독한 방법으로 고통받는 것을 선택하곤 한다. 반면에 우리는 웃고 좋은 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을 선호한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일상에 충실하려 한다. 그게 우리가 스스로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안에 있는 무언가에게 삼켜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트라우마과, 그 사람의 침묵이 거의 항상 함께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게 무엇인지, 그것을 큰 소리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판단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무자비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고, 스스로에게 불평하지 않고 낙관주의와 자신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삶의 롤모델로 손꼽히는 세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고통은 여전히 ​​불명예의 낙인으로 인식받고 있다. 불행히도, 이 때문에 아직 마음의 병을 치료받지 않고 있는 우울증 환자는 매우 많다. 사실, 20-30대의 젊은 청년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어, 사회 문제가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번 멈춰서, 진심으로 생각해볼 때이다.

침묵 속의 고통

침묵 속의 고통을 피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유명한 신문에서는,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절망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그녀는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일어날 기력도 없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신문을 읽은 80% 이상의 반응들이, 이 여성에 대해 잔혹할 정도로 비방을 남겼다.

산후우울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금기 사항 중 하나이다. 출산 을 겪은 후, 이 기분 장애를 경험했다고 말하는 여성에게는 즉시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것이, 완벽하고 행복한 어머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프게도, 많은 어머니들이 이 기간을 남에게 알리는 것을 꺼리고, 그리고 간혹 매우 잔혹한 결말로 우울증의 문을 닫기도 한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세상의 비난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에게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왕따와 학교 폭력의의 피해자이며, 침묵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아이들…. 그들은 자신의 방에서 외로이 살아가고 있으며, 사생활이라는 이름 속에서 숨어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마음 속만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너무 늦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가 더더욱 약해지고, 우리의 삶의 무기력해지기 전에!

여자의 눈물

우리가 침묵 속에서 고통받는 것을 멈춰야 하는  6가지 이유

침묵 속에서 고통을 멈춰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한다. 침묵 속에서는 고통만 심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고통이 점점 심해질 것이고, 우리를 파멸로 몰아넣을 것이다.

  • 증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성을 잃게 되고, 극렬한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대로 두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 부정적인 생각이 더더욱 강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의 감옥에 계속해서 갇혀있을 뿐이다.
  • 사회적 접촉이 우리에게 불편하게 작용하고, 그것을 거부 할 수도 있다. 포옹, 정서적인 애정, 친근함을 담은 말은 그 의미를 잃게 될 수 있다. 우리는 외부의 호의를 의심하게 되고, 우리에 대한 해악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상처를 더 썩히면, 이를 치료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 우리는 낙인을 영구적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방법을 취하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우리가 지금 겪는 일을 신뢰하는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트라우마를 깊게 만들고, 침묵과 고통을 키워나갈 뿐이다.

치료를 위한 연결

고통은 우리를 격리시키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우리를 연결해야만 한다. 우리가 자신의 나약함과 고통을 적절한 사람이나 자격을 갖춘 전문가와 나눌 때, 우리는 큰 두 걸음을 걸어나가는 셈이다.

첫 걸음은, 우리가 스스로를 방해하려는 행동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산후 우울증을 겪거나, 왕따의 피해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고, 또 그럴 이유도 없다. 트라우마가 어린 기억, 그리고 어린 시절의 절망에 빠져 살아갈 이유도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최악의 길로 몰아넣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도, 있을 이유가 없다.

두 번째 걸음은, 바로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마음 속에 담은 채, 심리 치료에 임한다. 분노를 갑옷처럼 두른 채,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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