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찾다

· 2018-10-31

고통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고난과 역경을 겪음으로써 전에 알지 못했던,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본래 내 모습에 직면하게 되었다. 늘 희망찬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는 어떠한 어려움도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런 바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누구나 시련을 겪는다. 우리는 모두 마음에 상처를 남길 만한 역경을 견뎌왔다. 아마도 겪지 않기를 바랐겠지만 겪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삶은 누구에게든 장미빛과 같을 수만은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고통 없는 삶을 위해 몸부림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역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역경을 배움의 기회로 활용해 본래의 모습을 찾도록 해야 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치료(therapy)가 필요하다. 

더 이상 고통을 빗겨 가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삶과 융합하여 인생의 한 챕터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고통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찾다

안전지대로서의 치료

정신적 치료 과정은 안전지대로 인식되어야 한다. 치료 과정에서 우리는 판단되지 않으며, 완전한 진실은 어디에도 없고, 언급된 모든 말들은 기밀에 부쳐진다. 이 치료를 통해 어려운 삶 속에도 우리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안전지대를 설립하도록 도움을 받는 것이다.

심리상담가들과 환자들은 치료를 위한 연결고리로서 모종의 동맹을 맺는다. 이 독특한 연결 고리는 잘 설립만 된다면 신뢰 관계를 공고히 해 준다.  이 탄탄한 관계를 바탕으로 환자들 마음속에 숨어있는 두려움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 고통에 직면하기 전에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아닌, 두려움과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찾다

고통에 이름 붙이기

고통에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진단하는 듯한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겪은 특별한 경험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고통에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가끔 우리의 고통의 원인은 워낙 특이하거나 반대로 진부해서 이름이 없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붙는 이름은 비록 붙이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을지라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쩌면 나의 어두운 면이거나 긴장감, 나의 그림자, 내가 되고 싶은 무엇인가일 수도 있다. 여기에 붙는 이름은 나에게 특별한 무엇인가를 정의하기 위해 치료 과정에서 쓰이는 이름일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이름 자체는 흔해 빠지더라도, 갖는 의미는 특별할 것이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역경 밑바닥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번 이름이 붙여지면 이 고통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하나의 독립체, 감정보다 더 뚜렷한 무엇인가로 변모할 것이다.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심리 전문가와 환자가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이 문제는 발전되고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찾다

경험을 새로운 나의 모습과 통합시키기

고통의 원인이 과거에 있으며 더 이상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를 극복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삶의 일부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문제를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든, 죄책감을 갖고 끝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또한 과거는 과거일 뿐이며 더 이상 바뀔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 역시 의미가 없다. 문제 자체와 그에 따르는 고통을 받아들이기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안 좋은 기억을 먼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본래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은 큰 도약이지만 내면에 나타나는 어두운 면을 인정하기 위한 단계다. 더 이상 고통으로 가득한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면의 악마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본래의 모습을 알게 되면, 과거의 일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