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피하는 것: 행복을 위한 고문

고통을 피하는 것: 행복을 위한 고문

마지막 업데이트: 10 12월, 2018

최근 몇십 년 동안 사회는 사람들에게 행복해지도록 강요를 해왔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고수하는 좌우명이 되었다.

너무 그 중요성을 강조해 행복의 독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분석가 이모 산치스는 “행복은 고문의 도구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울증 또한 널리 퍼진 병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고통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부정성’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느낀다. 아무도 그들의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고, 애도를 표하거나, 비관적 조짐을 보일 수 없다.

마치 고통은 금지된 연극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고통을 피하여 사는 것은 진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큰 시련과 고난을 받고 이곳에 왔다. 원치 않는 고통은 속죄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일하라.”

마틴 루터 킹

고통을 피하는 덫

의식적으로 고통을 경험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의식적인 단계에서 다른 일이 일어난다. 인간은 고통을 겪었던 곳으로 계속 찾아 들어가 수천 번 비틀거린다.

그렇다고 고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의가 너무 고통을 피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선택하지 않지만 이미 수반된다.

하지만 이를 부인하거나, 피하거나, 무시하려는 노력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극복하기에 더 어려운 고통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의 가장 당혹스러운 면은 이것이 기만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답하면 그런 사람을 피하기라도 하듯 당신에게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고통을 피하는 것

거짓 행복

정신 분석학자 루이스 혼슈타인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통으로 사무실에 찾아온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친 의존, 심각한 가치 오도, 오락가락하는 자부심으로 인하여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 고통이 세계적으로 표준화되기도 했다.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표준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피하고자 조언을 구한다. 고통 뒤에 숨겨진 이유를 이해하고 노력하지 않고 단순히 고통을 없애려고만 한다. 그것이 사람들이 심리 치료를 포기하는 이유이다.

대신 그들은 맹목적인 사랑, 외설적 집착, 회피적인 냉소주의 속에 잠기게 된다.

사람들은 성장하기 위해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었다. 감정적 고통은 경계와 손실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해준다. 고통을 피할 때가 아니라 직면할 때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행복해지는 법 배우기

행복은 일시적인 성취나 순간적 쾌락을 뛰어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마주치는 모든 것을 직면할 수 있다고 믿을 때 행복해진다.

우리는 자신이 불확실성과 경계에 노출된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더 행복해진다.

고통을 피하는 것은 행복의 반대다.

고통을 부정하는 것을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삶의 모든 고통에 내재한 성장의 기회를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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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louch, J. (2006). Erótica del duelo en tiempos de la muerte seca. El cuenco de pl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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