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론"에 대한 저항: 나쁜 하루를 보내고 싶다

행복해지려는 욕망은 행복감을 느끼는 의무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오늘 우리는 "행복이론(Happycracy)"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행복이론"에 대한 저항: 나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 업데이트: 28 1월, 2021

긍정 심리학은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의 작업과 함께 90년대에 등장했다. 그는 그것을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것에 관한 과학적 연구”라고 정의했다. 그 이후로 인생 코치, 동기를 유발하는 강연가 및 자기계발서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행복해지도록 강요해 오고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행복이론”, 즉 행복을 강요받는 것에 대한 심리적 의미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쁜 하루를 보내는 건 잘못된 걸까?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내가 아프다는 걸 의미할까? 일이 제 방식대로 되지 않아 화를 내는 건 내 삶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정상적인 감정을 병리 화하는 건 실제로 불행의 전염병으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행복이 기존의 정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질 것이다.

"행복이론"에 대한 저항: 나쁜 하루를 보내고 싶다

“행복이론”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는 보편적일까? 누군가가 우리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긍정 심리학 업계는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울증 발병률과 자살률이 그렇게 빠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이론”의 메시지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에 대처할 수 없는 능력을 비난한다.

결국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돕기 위한 모든 자원을 손끝에 가지고 있다. 생활 코치, 자기계발서, 양치질하는 동안 미소짓도록 상기 시켜 주는 욕실 거울 스티커 등등, 모든 의미에서 행복은 사업이다.

이 의무는 제임스 랑게 정서 이론(James-Lange theory of emotion)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은 감정이 표현에서 비롯된다고 잘못 언급했다. 이는 ‘슬퍼서 운다’ 대신 ‘울어서 슬프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세상이 지옥 같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시 행복을 느끼기 위해 미소 짓는 것뿐일까? 아니면 우리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머그잔에 담긴 메시지가 모든 것을 더 좋게 만들어 줄까?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이러한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수는 엄청나다. 문제는 “긍정적” 사고의 결과가 종종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먼저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불편함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인 편협함이다.

강요된 행복의 결과는 무엇일까?

방금 언급했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 및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을 상당히 용납하지 않는다. 슬픔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싫어한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몇 번이나 “하지만 울지 마!”라고 말했는가? 아니면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우리 몸은 울어야 한다고 말하는 데 “나는 울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 적이 몇 번인가? 감정은 상황에 적응하며 그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울음은 때때로 매우 필요하고 건강하다.

감정을 억누르려고 하면 처음에 했던 것보다 기분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심각한 정서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의 몇몇 결과는 다음과 같다.

죄책감

죄책감과 다양한 수준의 압력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이론이 우리가 지금 당장 괜찮아지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삶은 멋진 것이고 우리가 울면 삶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책감은 특정한 순간에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기분이 나지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어쩌면 우리는 일주일 동안 슬퍼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 너무 긴 기간이다. 그들이 볼 때 우리의 감정은 정상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과장해서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가 우울함을 좋아한다고 믿을 수도 있다. “행복이론”은 우리를 덜 공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보다 덜 인간적인 것이 있을까?

이로 인해 다음이 발생할 수 있다.

외로움과 사회적 지원의 부족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 부정적인 것이 실제로 사실일 수 있는 드문 경우 중 하나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감정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슬픔과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슬픔과 불편함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실제로 좋은 지원 네트워크가 종종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거나 나쁜 경험을 회복하도록 하는 열쇠가 된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고, 인정받고 있으며 또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것 없이는 상황이 복잡해진다. 문제는 더 커 보이고 스트레스와 불안도 더 커 보인다.

외로움과 사회적 지원의 부족

행복이론에 저항하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존중하자

개인적으로 나는 산타클로스라기보다는 그린치에 가깝다. 나에게 슬픔과 분노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진실하고 건전한 것은 없다. 아무리 회복력이 있더라도 나쁜 날을 보내게 되는 건 정상이다. 때때로 삶은 나에게 레몬을 주지만, 나는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싶지 않다. 그것은 쉬운 탈출구가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나쁜 하루를 보내고 우울함을 느낀다고 해서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영원한 웰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행복한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아마도 그들의 대처 전략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덜 건강하고 건설적인 회피일 것이다.

마음이 산산이 조각났을 때 억지로 미소짓는 것은 기분에 가장 해로운 일 중 하나이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둘은 모두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들을 항상 가리는 건 상황을 악화할 뿐이다.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고, 그것을 정상화하며, 감정 표현을 장려하는 건 단순히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보다 긍정적인 감정 상태로의 건강한 전환을 장려한다. 의무, 통제 또는 기한이 없는 그런 감정으로의 전환을 말이다. 우리 자신은 하나 이상의 부정적인 감정 그 이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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