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외로움의 등장 및 사랑에 대한 신화

· 2018-08-05

포스트모던 외로움(Postmodern Loneliness)은 개인주의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 것으로 인한 결과다. 사회는 우리에게 두 가지 매우 모순된 생각을 선사한다. 하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자 있는 것이 끔찍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포스트모던의 외로움은 서로를 두려워하는 것이 점점 흔해짐에 따라 더 강화된다. 이웃과 교류하는 일은 이제 완전히 없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하고, 그들이 오히려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사람들이 점점 더 외로워지며 이런 외로움과 싸우려고 발버둥치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살 수는 없지만 혼자가 아닌 세상을 창조했다. 고독과 친구 둘 다 문제다. 

문제가 된 외로움

낭만주의 시대까지만 해도 외로움은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는 외로움이 깊게 생각할 대상이거나, 존재 문제의 근원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해변가 사람: 포스트모던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신화

개인주의 또한 큰 이슈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온 가족이 한 집에서 사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며, 조부모, 아이들, 손주들, 가까운 친척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일도 흔했다. 사람들은 서로 알고 지냈고 서로 가까이 살았다.

동시에,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단적인 의식이 있었다. 미사 또는 일요 예배, 동네 파티 등 모두가 공동체의 일부라는 분명한 개념이 있었다.

이것은 낭만주의로 바뀌었다. 부부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되었다. 이상적인 삶은 둘이 조용히 살아가는 부부의 삶이 되었다. 사회는 점차적으로 그 부부와 그들이 생성한 작은 가족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외로움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외로움

대가족과 공동체의 사회에서 연인들의 사회로 흐름이 이동한 후,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함께 또 다른 새로운 현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때 포스트모던 외로움이 공식적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어느 때보다도 더 외로움을 느낀다.

슬픈 소녀

일부 사람들은 소셜미디어 게시판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 사실, 외로움이 너무 심해서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에 중독된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메시지를 받고 보내는 사실에 매료된다.

결국, 포스트모던 외로움의 틀 안에서 부부는 불균형적인 의미를 얻었다. 사람들은 연인이나 배우자가 없는 것이 커플 지옥에서 혼자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며, 이별은 마치 연애나 결혼이 행복의 유일한 원천인 것처럼 느끼게 하며 우리를 완전한 비참의 심연으로 빠지게 한다.

사랑과 외로움의 신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라

외로움과 사랑에 관한 신화에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된 것 같다. 포스트모던 외로움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문화는 우리를 평화, 성취감, 행복을 느끼도록 인도하지 않는다. 사실 그 반대다. 정서적인 어려움과 심리적인 문제들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을 기억하면서 시작해 보자. 모든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로맨틱한 사랑은 사랑의 다중적인 표현 중 하나일 뿐이다. 가족, 친구, 아이디어, 인본주의 그리고 물론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도 있다. 애인과의 사랑만을 위해 사랑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고 우리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

나무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 외로움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가치가 있다. 언제부터 외로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홀로 태어났고 홀로 죽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항상 임시적으로 우리 삶에 들어온다. 우리가 자기 자신과 외로움에 대해 더 잘 이해할수록, 삶과 죽음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가 더 잘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