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켈수스: 연금술사와 몽상가의 생애

2019-11-16
파라켈수스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머지, 한 소행성과 달의 분화구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의 삶과 업적은 괴테와 보르헤스와 같은 위대한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현대 독성학의 아버지로 간주되고 있다. 이 글에서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파라켈수스로 알고 있지만 파라켈수스, 그의 실제 이름은 필립푸스 오레올루스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트 폰 호헨하임이다. 그는 의학과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약간 광적이며, 예지력이 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매우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로 간주한다.

파라켈수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위대한 지적 야망이었다. 그는 납을 금으로 바꿀 수 있게 해 준다는 알려지지 않은 물질인 ‘철학자의 돌’을 찾고 싶은 열망이 매우 컸다. 그는 또한 그가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연구한 영원한 젊음을 위한 묘약을 찾고 싶어 했다.

그의 환상의 모험 속에서 파라켈수스는 비범한 연구원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독성학 및 약리학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부의 사람들은 그가 마술사와 과학자의 중간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 수도 있다.

그는 신화적이고 신비로운 신념에 가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명히 그 당시보다 앞서있었다.

파라켈수스, 천재의 시작

파라켈수스는 1493년 지금의 스위스 취리히 근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그의 가족 중 몇몇은 의사였으며, 이는 그의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크게 영향을 미쳤다.

젊었을 때, 그는 광산 분석가로 일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광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키워주었고, 나중에 그의 연구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16살 때 바젤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는 페라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라켈수스는 의학이란 교육기관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는 그 당시의 공식적인 의학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히포크라테스, 아비케나, 갈렌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의 동료들은 그에 대해 우려했다.

파라켈수스

실험자로서의 파라켈수스

초창기에 파라켈수스는 혼자서 실험하고 병자와 직접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의사들 사이에서 나쁜 평판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또한 그의 외모를 평가하기까지 했다. 그는 키가 작고, 대머리이며, 비만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거부했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이 천재 의사는 가장 무력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항상 선호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성공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실험들과 혁신적인 방법들은 풍문으로 많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가 악마와 거래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저주받은 의사’로 알려졌다. 비록 그는 신을 신실하게 믿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마법과 마녀술에 빠졌다고 비난했다.

그의 동료들과 다른 권위자들과의 팽팽한 긴장감은 그를 떠돌게 만들었다. 어디를 가든지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시작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다시 가야 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훌륭한 의사로 알려져 있었다.

파라켈수스 - 아편팅크제

연금술과 화학

파라켈수스는 광물과 화학 물질을 사용하여 질병을 치료했는데, 그 당시에 아무도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이로 인해 그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 간질, 나병 통풍의 경우를 성공적으로 치료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는 매독을 식별해내고 수은 치료를 제안한 최초의 의사였다.

이 위대한 연구학자는 또한 아편 팅크제를 발명했다. 이것은 최초의 화학 진통제 중 하나였다. 또한 독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고 오늘날까지 남겨진 격언을 만들어 냈다. ‘복용량이 독을 만든다.’

치유 기술은 의사가 아니라 자연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의사는 열린 마음으로 자연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파라켈수스-

당시의 다른 의사들과 달리, 파라켈수스는 환자들과 매우 가까웠다. 또한 그의 지식은 공개 영역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지역사회에 과학적 연구를 쉽게 풀어서 강연을 했다.

의학에 대한 파라켈수스의 접근방식

파라켈수스는 의학이 자연 과학, 천문학, 화학 및 사랑이라는 4가지 주요 축으로 확립했다. 그는 식물과 미네랄은 스스로 치유되지 않았다고 믿었다. 오히려 실제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신으로부터 선함과 영감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의 동료들과는 달리, 그는 수술의 장점을 굳게 믿었다. 그 당시 이발사가 수술을 수행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이것도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했다. 몇 세기 후, 많은 의사들은 그들의 방법에 영감을 받았다.

모든 의사가 그의 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추종자 중에는 다름 아닌, 의사이자 그의 친구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있었다. 한 독일의 왕자 또한 그를 보호해주었다.

파라켈수스는 47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고, 그에게 강도 행위를 하던 깡패 집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증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시간만 낭비한 셈이었다.

의학은 과학일 뿐만 아니라 예술이기도 하다. 이는 단지 알약과 반창고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지침을 받기 전에 의학은 누군가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 Santos, S. E. (2003). Paracelso el médico, Parecelso el alquimista. In Anales de la Real Sociedad española de química (No. 4, pp. 53-61). Real Sociedad Española de Quím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