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우리의 감정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

누구도 우리의 감정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

마지막 업데이트: 12 3월, 2018

누구도 우리의 감정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특히 우리가 눈물 날만큼 슬프거나 행복할 때 말이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아도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은 노력한다. 이는 잘못된게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당장 느껴야하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 때 사람들은 죄책감에 빠진다.

이는 특정 상황에 특정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시될 때 그러하다. 예를 들면 ‘출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기쁨의 순간으로 여겨진다. 새로운 삶, 엄마의 미소, 9개월간의 기다림의 끝…하지만 막상 출산해 본 여성들은 출산을 떠올릴 때 늘 즐겁지만은 않다.

장례와 죽음도 마찬가지다. 서구 사회에서는 누구가가 죽으면 슬퍼하는게 마땅하다. 죽음 앞에서 논리적으로 눈물을 흘리거나 표정이 심각하고, 고통스러워해야한다. 하지만 모든 사회가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죽음 앞에서의 슬픔은 우리가 그렇게 보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우리의 감정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표정의 여자

정서 및 방어 메커니즘

어떤 이유로 급작스럽게 사망(차사고, 자연 재해, 테러 등)한 가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져있다고 판단한다. 충격 받은 것은 어떻게보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기 위해 느끼는 방어 기제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당사자는 오열하는 등, 자신이 지닌 모든 감정을 속 시원하게 개방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방어 기제를 넘어서지 못한다.

아마 살면서 기둥이나 벽처럼 뾰족한 모서리에 무릎을 부딪힌 적이 있을 것이다. 부딪히고, 고통이 찾아올 때까지는 약간의 텀이 있다. 그 순간에 우리는 다가올 고통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위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충격은 찾아왔지만, 아직까지 그렇다할 슬픔, 고통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 느끼는 것은 공허함, 죄책감, 두려움 뿐이다.

이처럼 고통이 당장 느껴지지 않거나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는 우리가 상황을 부정할 때다. 상황에 대한 부정은 자연스럽게 슬픔을 없애준다. 이들은 늘 반응이 5분씩 늦기 때문에 그릇을 꺠는 일도 잦다. 하지만 그런 일 가지고 진정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상황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누락되는 감정

앞서 출산의 예에서 말했듯, 슬픔만이 예상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유일한 감정이 아니다. 이런 감정으로는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본인이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는 꿈, 지금까지 헌신했던 목표를 한번 떠올려 보아라. 그런 목표를 성취하게되면 엄청난 기쁨을 느끼겠지만, 반면 오히려 공허함, 슬픔을 느낄 수도 있다.

욕망은 20세기 철학적 비관 주의의 역설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욕망은 사그러든다.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상대방의 눈이 빛나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그렇게 좋게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실 남보다 행복한 커플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커플이다. 이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결국 궁극적으로 기쁨이 사라진다. 기쁨이 사라진 자리는 불확실성이 자리 잡는다. 지금 내 애인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날 예전처럼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행복하고 슬픈 사과

누구도 우리의 감정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

만약 이런 감정의 부조화가 불편하지만 않았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질타를 받거나 죄책감을 느끼는데, 마찬가지로 아이의 탄생을 마냥 기뻐하지 않는 엄마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된다.

비슷한 상황으로는, 죄책감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인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도한다. 심지어 본인이 사이코패스기 때문에 슬픔을 못 느끼는거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감정이 없는 사람 말이다.

사실 사회로부터 강요되는 관념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신생아들에 대해서는 무슨 ‘대리모’라도 되는 듯, 아이들에 대해 이것저것 전부 지적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잘 관리된다면 이런 조언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오히려 엄마의 자존감을 낮추고 자기 자신을 불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강요되는 죄책감

일반 사람들은 우리가 슬픔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질타한다. 특히 사랑하는 누군가가 전쟁 등을 통해 죽었을 때 말이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이틀 뒤에 파티를 갈 수 있어.” “그렇게 아무렇지않게 일을 가다니, 그 사람을 별로 사랑하지 않았나보네.”이런 평가는 터무니없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재된 말이다…우리에게는 남의 감정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잣대를 두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포함한 누구도 스스로의, 남의 감정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어떤 감정도 더 좋고 나쁘지 않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감정과 상관 없을 때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평가 당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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