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에서 책임감으로

· 2017-07-03

죄책감은 아주 독하다. 죄책감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불안감과 의심으로 마음을 채운다. 결국 죄책감은 그 외의 목적을 지니지 않는다.

죄책감은 그 사람이 한 행동, 말, 생각, 일반적인 가치관에 어긋나는, 논의의 여지가 있는 감정을 느꼈던 경험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

죄책감으로 인해 그 사람은 자기 탓을 하고, 자기 가치를 깎아내린다. 극적으로는 자살하려는 생각과 충동을 느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죄책감은 스스로를 최악의 적으로 만들어버리고,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할 때까지 내면 속의 지옥을 만들어낸다.

“빚과 마찬가지로, 죄책감은 그 값을 치루기 전까지는 극복될 수 없다.”

하신토 베나벤테(Jacinto Benavente)-

죄책감의 종류

일반적인 죄책감은 합법으로 여겨지는 일반 상식을 어길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물건을 훔치거나, 본인이 믿던 사회적, 종교적 가치관을 어겼을 때 말이다.

또 명확한 정의가 없는 상식을 어김으로써 파생되는 여러 종류의 죄책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뭔가 성공으로의 정해진 패턴에 따라야할 것 같지만 그럴 능력이 없을 때 말이다.

이런 경우, 어디서도 노골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 같은, 모범적인, 혹은 “법”적인 명령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비난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사람의 내면에는 그런 일이 충분히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예로는, 부모님한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다시는 부모님을 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를 들 수 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을 가다듬고 나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자책하곤 한다.

하지만 가장 복잡한 형태의 죄책감은 무의식적인 죄책감이다.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고 생각하며, 감정을 느낀다. 상식적이지 않은 성적 판타지, 혹은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은밀하게 탐하는 것 등 말이다.

이런 경우, 죄책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악한 마음을 만들어낸다. 불안감과 슬픔의 감정이 생겨나지만, 애매하며 이유 없는 감정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무의식적인 죄책감은 어떤 형태의 벌을 받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표출된다. 당사자는 벌을 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비난 받을만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중요한 자리에 지각해서 잔소리를 듣거나,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한 소리를 듣는다.

복잡한 개념: 책임감

누구나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먼저, 자신이 어긴, 상식이라고 자리잡은 것들이 정말 상식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통”이고 “합법”적인 것들이 인권과 반대였던 경우는 정말 많다. 가장 극단적인 헤프닝은 나치즘으로, 당시에 “인종 우월주의”가 아주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상식적인 가치관을 맹목적으로 따르면 안된다. 비록 권력이 있는 사람이 설득한다 하더라도, 만약 그 가치관의 기저에 있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왜 존재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된다.

우리의 죄책감을 알아내기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의도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끔찍한 목적을 갖고 선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더 중요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반 상식을 어기기도 한다.

무의식적 죄책감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보면, 누구는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잘못도 아닌 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되거나, 지속적인 불안감을 느끼거나 존재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된다.

이런 모든 경우에 우리는 죄책감이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쓸모 없는 감정인지를 알게 된다. 죄책감을 느낄 때, 우리는 본인에게 힘든 시간을 줄 뿐이다.

죄책감으로 벗어나지 위해서는 우리가 만든 피해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즉,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그 피해를 복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죄책감을 갖고 자학한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성장을 더디게 한다. 우리가 초래한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이야 말로 이런 쓸모 없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미지 제공 Pete Revonkorpi, Benjamin Lacombe and Duy Huy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