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제로 이전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2017-10-17

아무리 이 말이 진실처럼 느껴져도, 새로운 문제로 이전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은 (잘못되었지만) 더 흔하게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전 애인을 잊으려면 새 애인을 만나라”라는 표현도 있다. 잘못됐다! 최근에 겪은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진통제를 찾으러 다니는 마냥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은 최선책이 아니다.

새로운 문제로 이전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 마음 속에 깊이 박힌 돌은 처음에 그 돌을 박아 넣은 사람에 의해서만 빠질 수 있다. 새로운 돌을 집어넣으려고 해봐야 구멍만 커질 뿐이다.

이별의 슬픔은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마치 비센트 가리도(Vicente Garrido) 의사가 말했듯이, 사람은 종종 이유를 찾기 위해 목을 맨다. 우리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는데 어째서 연애가 잘 안풀릴 때가 존재하는 걸까? 왜냐면 그 사랑이 식었거나, 혹은 한 쪽이 책임감을 지기에는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너무 짧고 미련은 정말 길구나…”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마지막 인사, 거리감, 새로운 삶의 시작을 받아들여야하지만 침대 반대 편에,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는 저 빈공간은…절망적이다. 뇌는 “비상”사태에 빠져들게 된다. 뇌는 이 고통을 실제 타들어가는 고통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우리는 도파민을 많이 분비해 이런 고통을 치유해야만 한다. 빠르고 쉬운 길로 우리의 영혼을 치료해야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을 잘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며 이 슬픔의 과정을 피해가곤 한다. 하나씩 부서진 심장을 천천히, 부드럽게 치유한다. 다른 사람들은 반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옛 애인을 찾으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아까 말했듯이 다른 사람으로 그 사람을 잊으려고 한다.

하트 모양 위의 못

우리 심장 속에 살아가는 못자국

흔히 말하는 “못이 다른 못을 빼냈다(one nail drives out another)”라는 표현은 마르코 튜리오 시세론이 44 a.c에 쓴 “튀스쿨룸 논쟁(Tusculan Disputes)”에서 비롯되었다. 이 문자는 마르카 브루토(Marca Bruto)를 향한 말이었으며, 여기서 그는 “Novo amore, veteram amorem, tamquam clavo clavum, eficiendum putant.”라고 적었다. 이 뜻은 새로 온 못이 기존의 못을 뽑듯, 새로운 사랑이 옛 사랑을 잊게 할 것이다 라는 의미다.

당연히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새롭고 안정적이고 행복하며 성숙한 인간관계 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이럴 준비가 되었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비록 어떤 사람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이별에 대한 슬픔을 막을 밴드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별, 감정적 난파선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신경과학자인 루시 브라운(Lucy Brown)는 사랑에 대한 뇌 작용을 잘 아는 전문가다. 그녀는 보통 감정적 이별을 잊기 위해서는 6개월에서 2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다양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남자들이 이별을 더 잊기 힘들어한다. 반면 여성은 처음에는 아주 힘들어하지만 비교적 더 빨리 이별의 상처를 극복해낸다고 한다.

안개 속을 달리는 사람들

이별이 트라우마적인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인간의 뇌는 본래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감하도록 제조되었기 때문이다. 애정과 사랑을 베이스로 한 정신적 교감보다 더 보람찬 일은 별로 없다. 이런 교감을 깨뜨리는 것은 그야말로 난파선과 같은 일이다.

연애하는 초반 단계에 느끼는 그 열정이 우리 뇌로 전달된다고 생각할 때, 이별 역시 마찬가지다. 슬픔을 체험하는 이별의 순간 말이다. 다 뇌의 같은 부분에서 이뤄진다. 한동안은 우리의 감정이 이성을 이길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눈물로 범벅된 이 그림자 속에서 극복해낼 수 있다.

애도할 시간, 사랑할 시간

아주 고통스럽고 복잡했던 연애를 끝내고 접어드는 새로운 연애는 우리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다. 다시 웃고 재밌는 시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주의를 끌어주는 역할은 한다. 하지만 제대로 슬퍼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훗날 찾아오는 공허함이 배로 된다. 우리는 늘 사랑 받길, 위로 받길 원한다.우리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 사람이 생각나는 침묵보다 마구 떠들 수 있는 강렬한 상황을 찾게 된다.

“누군가 말하길, 망각은 기억으로 가득하다.”

-마리오 베네데티(Mario Benedetti)-

우리는 어떤 것도 반쪽이기를 원하지 않으며 이런 점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찾는 것은 그저 안락하고 따뜻한 누군가의 품일 뿐인데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사람은 모두 독립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위험 천만한 행동이 생각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못의 운명은 어딘가에 박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큰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말을 기억해라.

노을

감정의 도둑

그저 우리의 결점, 욕구, 불안감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연애로 인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뺏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집을 털기 위해 밤에 나타나는 도둑처럼 말이다. 이는 비도덕적인 행위다.

우리는 요즘 들어 “이제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서로에게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보면, “잘 지내, 그냥 앞으로 가는거지” 식으로 대답을 많이 한다. 마치 인생은 멈추면 지는 레이스 위를 달리는 경주와도 같다.

하지만 가끔 멈춰서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는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지 않는다. 그곳에서 여왕은 살아남으려면 빨리 달리라고 시켰다. 하지만 우리 뇌는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잠시 동안의 침묵을 필요로한다.

울고 다시 사랑할 시간은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사랑할 시간 말이다. 슬픔과 조각난 꿈으로 가득한 마음은 자존감을 낮춘다. 누구도 이런 짐덩이를 안고서 행복해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