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사랑은 배우는 것

2018-12-25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사람들은 자유롭고 풍요한 행동으로 매일 사랑을 기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숙하고 지각이 있는 방법으로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은 사랑이 소유도 조건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사랑은 관심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성장을 증진하는 확고한 욕구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흥미롭고 굉장한 책을 썼을 때, 그에게 놓인 상황은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유대인 정신 분석가이자 인문주의 철학가를 만날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단지 몇 안 되는 사람만이 그가 했던 것과 같은 변화를 만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50년대까지 프롬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적 기반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 한 위대한 탈무드 학자이며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가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 정착한 다소 과묵한 지식인이었다. 바로 이전 아내의 죽음(자살로 인한)과 분열되고 파괴된 유럽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이혼의 무게까지 남았다.

그가 멕시코로 이사를 하고 평화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운동가가 될 것을 결심한 10년이었다. 에리히프롬은 행복과 세상에 마음을 열고 그가 믿었던 것을 위해 싸우고 삶의 관점을 바꾸기를 원했다. 그는 매우 영향력 있는 치료사가 되었고 케네디 대통령과 친구가 되었다. 그는 또한 안니스 프리만이라는 훌륭한 여성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그의 이전 아내들에 대한 쓰라린 기억에도 불구하고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배우는 것이라는 확신에 찬 목표를 만들었다. 그는 자기 생애에서 어느 정도는 최고가 되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그녀뿐만 아니라 세상의 나머지 부분도 사랑하기를 원했다. 그의 유명한 책은 그의 삶의 지난 10년 동안 그가 경험한 행복에서 왔다.

에리히 프롬에게 사랑 배우기

에리히 프롬: 사랑은 배우는 것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틱낫한(Thich Nhat Hanh)이 말한 이 인용구는 더 분명한 현실을 요약한다. 우리 중의 대부분은 ‘사랑의 예술’을 익히지는 못했다. 우리는 우연히 우리 자신을 감추는 현실의 초보자이다. 우리는 때때로 성인 대신에 어린이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우리 자신을 제한한다. 그것은 주로 우리의 문화 때문이다.

우리는 일련의 규범을 통해 살아 왔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마법과 이상의 구성물로 사랑을 보게 만들었다. 현 사회에는 남성이 여성을 매료시키는 “정중한 사랑”의 개념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큐피트 화살의 희생자이고 진정한 열정은 셰익스피어의 베로나의 영원한 연인들이 경험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우리가 모두 운명의 빨간 실을 통해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운명이라고 믿는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예술’에서 사랑은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사랑은 예술가들이 하는 훈련된 어떤 것이다. 사랑을 배우는 것은 연습, 숙달, 그리고 노력과 부담감이 우연이나 운명에 어떤 것도 남기지 않는 지속적인 것을 필요로 한다.

“사랑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규율, 집중, 인내, 믿음, 그리고 나르시시즘의 극복이 필요하다. 그것은 느낌이 아니라 연습이다.”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이 가르친 사랑에 관해 가르친 것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적극적인 사랑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거나 존재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관심과 평가를 받으며 진가를 알아봐 주고 존경과 입증을 받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소극적인 사랑은 미숙하고 효과가 없다.

“미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해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에리히 프롬-

사랑은 쉬는 것이 아니라 활동적이고 현재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서로 관심을 주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누군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알 때, 참여하게 하고 주고받으며 항상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성장이 있는 프로젝트의 적극적인 일부분이 되기를 계속한다.

에리히 프롬: 사랑은 배우는 것

완벽한 사람을 찾는 우리의 영원한 관심

사랑을 배우는 것은 다른 면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모든 우리의 꿈과 갈망이 조화롭게 어울린 이상적인 사람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걱정을 한다. 종종 우리는 실제로 사랑을 유지할 수준에 미치지 못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해서 좌절하곤 한다.

우리는 때때로 낭만적인 구조로 가득 차서 매우 중요한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은 어떤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좋은 관계로 다가오는 도전에 어떻게 직면할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을 배우는 것

필요에 의한 사랑

사랑을 배우는 것은 모든 욕구를 어떻게 없앨지 아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결점을 채우기 위해 낭만적인 관계를 찾는 누구든지 만족을 느끼지 못해서 다른 사람을 영구적인 노예의 상태로 이끌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은 창조적인 행동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에 의하면 사랑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다. 사랑은 우리가 움직이고 자신을 표현하고 창조하도록 격려하는 충동이다. 이전의 서술과 관련해서 보면 이 광범위하고 창의적인 힘은 우리의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했을 때만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예술’에서 쓴 것은 그 에너지를 단지 느끼기만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은 살고 형성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열정은 감정, 성숙, 균형이 필요하고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힘든 노동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사랑의 예술

사랑은 음악, 그림, 목공, 쓰기, 건축과 같다: 당신은 그 이론을 이해하고 숙달할 필요가 있다. 매우 창의적인 엔지니어같이, 우리는 모든 어려움, 도전, 그리고 도로에서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프롬의 말에 의하면 사랑은 종종 우리를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쳐온) 정의하는 그런 유치한 관점들을 남길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랑을 수동적인 행동으로 보는 것을 멈추고 마법처럼 두 사람을 묶는 불꽃으로 보기 시작해야 한다. 사랑은 실체이고 몸이며 어떤 사안이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을 원하고 그것에 책임을 갖는다면 굉장한 프로젝트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는 원 재료가 된다.

“사랑이란 보장하지 않고 자신을 주는 것이며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만들 것이라는 희망에서 자신을 완전히 주는 것이다. 사랑은 믿음의 행위이며 믿음이 적은 사람은 사랑 또 한 거의 없다.”

-에리히 프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