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랄트 슐츠 헨케 : 반체제적인 정신분석가

17 12월, 2019
하랄트 슐츠 헨케의 인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력은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성향이었다. 그는 나중에 스탈린주의 모델의 틀 역할을 하는 나치즘을 위한 일종의 심리 치료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랄트 슐츠 헨케는 1892년 8월 18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독일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였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그의 어머니는 필적학자였고 그의 아버지는 물리학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의 가족은 부유한 편이었고 슐츠 헨케의 유년기는 평탄했으며 사건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하랄트 슐츠 헨케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에서 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그에게 트라우마적인 경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의학을 공부했다. 그의 연구 과정에서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오늘 우리는 다소 모호하면서 미스터리한 독일 정신분석학자의 삶과 업적을 탐구하려고 한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알버트 아인슈타인-

하랄트 슐츠 헨케의 정신분석학 도입

산도르 라도와의 정신분석 세션에서 슐츠 헨케는 정신 치료에 초점에 맞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는 성(sexuality)과 무의식에 관한 프로이트 이론 일부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결과 슐츠 헨케는 독일 정신분석학회에서 제외된다. 그 후, 그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작품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자신을 사회주의자로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프로이트와의 의견 차이로 인해 그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특정한 이름을 짓지 않았지만 정신분석학을 위한 새로운 학파를 설립하기를 희망했다.

1926년에 그는 국제 정신치료 의료 협회(AAGP)를 설립하였는데, 이는 정통 정신과 의사와 정신분석가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단체로 그는 이 그룹이 그의 새로운 이론을 지지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랄트 슐츠 헨케 : 반체제적인 정신분석가 01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이제 나온다. 하랄트 슐츠 헨케는 우리가 현재 독일 정신분석학의 ‘나치화’라고 부르는 것에 공헌한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

나치당이 부상하면서 슐츠 헨케는 마티아스 하인리히 괴링과 친밀 동료 사이가 된다. 다른 정신분석가들과 함께 그들은 나중에 괴링 연구소로 알려진 유명한 베를린 정신분석 연구소를 설립한다.

그는 또한 국제 심리 치료를 위한 국제 의료 협회(앞서 언급한 AAGP)를 설립했다. 이 협회의 주요 목표는 그가 나치 원칙에 사용한 특정 유형의 심리 치료법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대를 산 일부는 이를 기회주의적이며 나약한 움직임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사람들이 프로이트의 책을 불태우고 다른 정신분석가를 추방하고 박해했던 점을 고려했을 때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랄트 슐츠 헨케의 신정신분석

역사가들은 하랄트 슐츠 헨케, 펠릭스 보엠, 칼 뮐러 브라운쉬베히 및 베 켐퍼를 나치가 장려한 ‘새로운 독일 영혼을 위한 의학’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슐츠 헨케는 ‘독일 태생을 위한 심리 치료’의 최전선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진정한 개인적 신념 때문이 아닌 정권에 아첨하기 위해 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놨고 이를 발전시켰다. 그는 자신의 이론과 방법을 ‘신정신분석’ 또는 ‘신분석’이라고 불렀다.

하랄트 슐츠 헨케의 목표는 고전적인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파블로프의 법칙을 종합하는 것이었다. 독일이 항복했을 때 슐츠 헨케는 소비에트가 점령한 동 베를린에서 정신과 의사 모임을 조직했다.

그 회의에서 그는 처음으로 신정신분석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그는 그의 새로운 학파가 고전적인 정신분석의 모순과 맞섰고 공산주의 최고의 원칙을 통합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머리를 보여주는 그림

하랄트 슐츠 헨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역할

슐츠 헨케는 나치 정권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매우 헌신적인 마음으로 소련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는 독일 민주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일했으며 스탈린주의 시대에 프로이트 사상을 박해하는 데 크게 관여했다. 그는 또한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에 대한 아이디어에 매우 관심이 있었다.

IPA (International Psychoanalytical Association)의 정신분석가들은 슐츠 헨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그의 사상에 대한 과학적 기초에 대해 문제시 삼았기 때문에 슐츠의 명백한 기회주의적 면모에 대해선 그렇게까지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IPA의 원칙과는 거리가 먼 이론에 대해 ‘정신분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큰 불만을 표출했다.

이러한 비평가들에도 불구하고 하랄트 슐츠 헨케는 공산주의 독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심지어 ‘억제된 인간 (Inhibited Man)’이라는 잘 알려져 있는 책을 저술했다. 슐츠 헨케는 1953년 5월 23일 동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그의 사상은 사회주의 세계에서 인정되었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는 아무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Schultz-Hencke, H. (1951). Sobre el desarrollo y el futuro de los conceptos psicoanalíticos. Revista de psicoanálisis, 8(2), 283-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