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브리 할아버지: 구걸하는 성자 할아버지

01 10월, 2020
도브리 할아버지는 소설의 한 페이지에서 나온 것 같은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에게 물질적 소유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될 때, 이 사람은 엄청난 관대함과 위대한 고귀함의 예를 보여주었다.

그의 이름은 도브리 디미트로프 도브레브였지만 모두가 도브리 할아버지로 알고 있었다. 그는 불가리아에서 유명하고 위대한 인물이 되었고 그의 명성은 많은 다른 나라들로 퍼졌다. 그의 놀라운 관대함으로 많은 사람이 그에게 “바일로보의 성자”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비록 거지였지만, 그는 온 세상의 고귀함과 청렴함의 본보기가 되었다.

도브리 할아버지는 1914년 7월 20일 바일로보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2018년 2월 13일 103세로 별세했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데, 모든 위대한 인간들처럼, 전기적인 세부사항보다 그의 작업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원히 보답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 주기 전에는 오늘을 살지 않았다.”

존 버니언

이 남자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생의 마지막 18년 동안 유지한 습관이었다. 매일, 그는 고향인 바일로보에서 소피아까지 6마일 이상을 걸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을 교회나 자선 기관에 기부하곤 했다.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똑같은 일을 했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 도브리 할아버지

수수께끼 같은 인물 도브리 할아버지

사실 도브리 할아버지의 생전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아마도 지난 20년 동안 소피아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어느 시점에 그와 마주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부터 누더기를 걸친 이 노인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의 이야기를 알고 그를 성인으로 여겼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손에 키스하도록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들은 그를 천사의 후광을 받은 사람으로 보았고, 그의 모범은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사실 그가 죽었을 때 그를 아는 많은 사람이 그의 시성 화를 요청했다.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믿음과 사랑의 본보기로 여겼다.

도브리는 소피아의 거리를 걸으며 길을 건너는 모든 사람에게 동전을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돈을 주로 교회에 기부했다.

사람들은 그가 순례하는 동안 총 4만 유로를 모아 기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브리 할아버지가 왜 이런 일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과거에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어서 신의 용서를 얻기 위해 매일 이렇게 힘든 참회를 하는 것을 자기 일로 삼았고 말했다. 그는 평생 거지가 아니었다. 그는 2000년에 이 일을 시작했다.

도브리 할아버지는 어디서 왔을까?

도브리 할아버지는 소셜 네트워크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다른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삶에 대해 몇 가지 알아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전히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우리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드미트리였고 1차 세계 대전 중에 죽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는 어머니인 카타리나에 의해 길러졌다. 도브리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군대에 입대하신 것으로 보인다. 전쟁 중 어느 날, 폭탄이 그의 근처에 떨어져 폭발했고, 청력을 잃었다.

사람들은 그가 결혼해서 네 명의 딸을 낳았다고 말하는데, 그중 두 명은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미스터리다.

우리는 그가 2000년에 모든 재산을 교회와 자선 기관에 기부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 시점에서 그는 구걸하기 시작했고 그가 받은 모든 것을 기부했다.

성자 할아버지

성자 할아버지

도브리 할아버지는 교회의 성사 안에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가구가 거의 없었고,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국가 보조금을 받았다.

그는 이 글귀가 새겨진 명패 위에서 잠을 잤다. “사람은 도둑질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간통을 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그를 만난 사람들은 미소와 친절한 말을 받았다. 그는 온순한 성격을 지녔으며, 그와의 모든 대화가 필연적으로 신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아도, 그는 전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사일런트 엔젤이라는 제목의 그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이 외에도, 나시모라는 유명한 불가리아 그라피티 예술가는 소피아의 높은 빌딩에 이 남자를 위해 거대한 벽화를 만들었다. 그의 죽음은 온 나라에서 슬퍼했지만,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흔적 때문에 많은 사람은 그가 여전히 그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Iztueta Goizueta, G. (2013). “Hogar es una palabra mágica”: Hugo Schol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