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한다는 것은 분노를 흘려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25 11월, 2017

용서한다는 것은 “널 용서할게”라는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는 것 그 이상이다. 용서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슬픔을 주었던 그 일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면 동시에 그 기억과 화해하는 것이다. 분노가 사라지는 그 순간 우리는 충만함을 느끼고 자유와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용서에는 엄청난 정신적 힘과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상처를 받았다면 우선 분노하게 된다. 위협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분노의 감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위협이 더 이상 없다면 분노할 필요가 없어진다.

장기적으로 고착화된 분노는 천천히 우리를 잠식해온다. 우리 마음 속에는 분개, 혐오, 복수에 대한 갈망으로 채워지지만 이는 모두 쓸데 없는 부정적인 감정일 뿐이다. 이런 감정들을 가지고 있어도 과거는 지워지지 않으며, 현재나 미래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성적으로 용서하기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 속에서 지우기 위해선 생각의 힘을 발휘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마음을 다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을 통제해 그런 감정들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다. 이성적인 사고방식은 상상에 따라, 혹은 즉흥적으로 행동하려는 본능을 제어해준다. 있는 사실을 과장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해야 했던 일들’로 인해 고통받지 않게 된다.

분노에 차 있으면 타인이 특정 행동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느껴진다. 이로 인해 타인을 용서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작은 종이하트: 용서한다는 것은 분노를 흘려보내는 것

하지만 누구든 스스로의 기준에 맞는 행동을 할 자유가 있다. 이 사실을 너무 부정적이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상처를 준 타인을 용서하는 일도 조금은 수월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무거운 분노, 복수,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실수하고, 헷갈려하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이처럼 감정은 뇌에서 가장 원시적인 현상이다.

비록 상처로 인해 고통을 받았더라도, 분개가 이 상황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두 가지 문제점을 갖게 될 것이다. 우선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받은 상처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심화시키는 우리 내면의 분노하는 감정이다.

또 다른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남들이 뭐라하든 상처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약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진실이다. 만약 우리에게 균형 잡힌 자존감과 자신감이 있다면 누군가에게서 쉽게 상처받지 않게 된다. 적어도 신체적인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말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욕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말 쯤은 상처로 남지 않게 된다. 그렇지 않고 그 사람의 상처되는 말을 믿어버린다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다.

다채로운 색깔의 여인

이게 엄청 힘들다고 생각이 든다면 맞다. 누구도 우리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온 힘을 다해 우리의 명예를 지키고, 마치 각자가 최고의 존재인 것처럼 자존심을 치켜세우는 방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적 상처에 면역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잠깐 멈춰서 생각해본다면, 이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태도로 이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는 어떠한 현실적 소용이 없다.

진심으로 용서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비록 용서란 용기를 필요로하는 어려운 행동이지만 누구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던 이성적인 생각이 우선 실행되어야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 공감을 할 수 있어야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적어도 하나라도 느낄 때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혼란스러워할 뿐이다.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믿는다. 상대방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하고 싶은 것이지만, 가식적인 이 사회가 잘못 가르친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 역시 혼란을 느낀다. 누구나 살다보면 실패할 수 있다. 당연하다.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상대방을 용서할 준비가 된 것이다. 또한 이런 깨달음으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졌을 것이다.
포옹하는 친구들

  • 상대방의 행동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이 불완전하며, 사람은 그것보다 더 심하다는 사실을 참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 상황, 사실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된다. 심지어 내 가치관의 정반대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지만,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니다.
  • 그 사람을 봤을 때 더 이상 분노나 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살면서 좋은 일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용서한다는 것은 분노를 흘려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분노보다 열정을 느낄 수 있다면 용서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기존의 행동을 고치고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들 어깨에 무겁게 존재하는 불운의 신호일 뿐이었다고 넘어가게된다.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용서는 부정적인 감정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마지막으로 얻는 상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런 상을 탄다면 이익을 받는 사람은 바로 우리일 것이다. 이제는 이전에 받았던 상처를 훌훌 털어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껏 짊어왔던 쓸데 없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