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상봉: 더 이상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13 6월, 2018

때때로, 가족 상봉 혹은 가족 모임은 우리가 이전과 같지 않은 사람처럼 느끼게 만든다. 부모님께, 우리는 아직도 우유부단하고 반항적인 어린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독립적인 성인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마치 20년 전 아이의 모습으로 부모님은 우리를 바라본다.

종종, 사람들은 휴가 동안에 가족을 만난 경험이 정말 끔찍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세상 모든 가족들은 다양하고 개성있다. 어떤 가족에게 있어서 가족 간의 화합, 존경심, 즐거운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가하면 어떤 가족들은 삐걱대고 잘 흘러가지 않는다. 이런 경우, 가족 구성원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질식하는 듯 괴로워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다. 불행한 가정 역시 나름대로 불행하다.
레온 톨스토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이전에 독립적이었던 많은 젊은이들이 별 다른 선택 없이 가족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종종, 현실 세계에서 실패했다는 기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에 버리고 온 것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현재의 자기 모습과는 전혀 관련 없어진, 이전의 ‘가족’으로서의 역할이다.

다채로운 가족: 가족 상봉

가족 상봉: 가족과 무의식적인 설정

부모님, 삼촌, 숙모, 조부모님께, 우리의 어린 시절의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늘 그 가족의 둘째 아이다. 평생을 형의 흉내를 내며 동생이 받는 사랑을 부러워했던 그 아이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를 “성격이 나쁘다”라고 한 말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너무 반항적이고 통제할 수 없이 다루기 힘든 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기질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사전 예방적이고 창의적인 지금의 모습을 말이다…우리는 지금의 모습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끊임 없는 말 때문에 우리가 부정적으로 인식하곤 했던 습관은 이제 생각해보니 굳히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사실 결점이 아닌, 진정한 미덕이었다.

하지만, 자주, 집으로 돌아가거나 가족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껄끄럽다. 무슨 말을, 행동을 해도 “네가 얼마나 고집 세고 다루기 힘들었는지 좀 봐. 왜 이렇게 성격이 나빠! 대체 누굴 닮아서 저러지?”라는 말을 금방 듣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소녀

현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가능한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금세 반항적이었던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현재의 우리의 업적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많은 가족들이 이전 역할로 돌아가는 무의식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에 의해 만들어지고 형성된 그 역할로 말이다.

이러한 유형의 현상은 매우 흔하며 사실 흥미로운 설명을 가지고 있다. 일리노이 대학(University of Illinois)에 따르면 가족 제도 내에서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모든 가족에는 무의식적으로 따라야하는 규칙과 각 멤버만의 역할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역할을 저버리지 말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감도 존재한다.

만약 당신이 개인적이거나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아마 분명 복잡한 상황에 처해있을 것이다.

지금 성인인 것처럼 당신의 가족과 소통해야 한다

때때로, 시간을 거슬러 여행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는 불쾌할 때도 있지만, 어떻게보면 해결되지 않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의 일부다. 바다만큼 먼 거리를 만들었던 갈등을 말이다. 심지어 우리가 과거에 남겨두었던 역할을 다시 맡아야 하는 것을 포함한다.

  • “덫”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모습,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껏 경험한 모든 불행을 받아들이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우리가 얻은 모든 교훈, 미덕, 그리고 장점을 간직해라.
  • 이래야 사전 협의된 바와, 심지어 부모님에 의해 형성된 원형을 마주 할 수 있다. 루이스는 운동 선수이다. 카르멘은 반항아다. 알베르토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다른 사람들이 지켜줘야 했던 사람이다.
  • 하지만 어쩌면 루이스는 평생 몰래 쓴 시를 모아 시집을 내고 싶어할 수도 있다. 어쩌면 카르멘은 전혀 반항적이지 않았고, 그저 마음에 화가 많은 사람일 수 있다. 괴롭힘을 당하던 마른 아이 알베르토는 이제 정의로운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다.
식탁에 모인 가족

지금의 나를 가족이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

우리가 과거에 어땠든, 어떤 사람이든, 지금 우리의 모습과는 상관 없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더 정확할 것이다. 가족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렸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그들 눈에는 불만스러운 행동들이 곧 나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자유가 있는 가족보다 더 건강한 환경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