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처럼 돌보아야 하는 창의성
창의성, 이 단어는 흔한 단어다. 창의성에 관해 전문가든 그렇지 않든, 모두가 즐겨 쓰는 단어다. 그렇지만 창의성이 우리 일상에 어떤 식으로 유용하게 사용되는지 알고 있는가? 창의성은 뭔가 아이들, 심지어 청소년들까지도 지니고 있어야만하는 기능쯤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창의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창의성: 창의적이면 문제 해결이 빠르다
창의성은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창의성이 미친 천재들한테나 있는 기질 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이게 쓰이게 되었다. 누구는 빨리 발현되고 누구는 늦게 발현될 뿐이지, 창의성은 우리 모두에게나 있는 기질이다.
창의성을 깨친 사람들은 아주 풍부한 내면의 세계를 지닌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상상력이 문제 해결 능력, 혹은 질문 던지는 일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한 가지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셀수 없이 많은 차선책들과 가능성들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논리를 쓰면 A에서 B를 갈 수 있다. 상상력이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유연한 사고가 창의적이다
창의성은 동사 “창작하다”에서 나온 명사다. 창작하는 일은 그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화가, 예술가, 건축가, 뮤지션과 같은 직업에만 한정해서 쓰이는 단어도 아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등장하는 문제에 대한 독특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또한 이전까지 누구도 고려해보지 않았던 주제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중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부터 창의력을 키워왔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교육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창의성을 격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아이가 날개 달린 양을 그렸다고 가정해보자. 양에는 날개가 없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그림이다.
사실만 따지면 양들은 날개가 없다. 이건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양에 날개를 그리는 아이가 갖는 문제는 뭘까? 왜 우리는 이런 “예술 작품” 을 걸러야만 하는가?
벌이 아닌 보상으로 키워지는 창의성
특히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강조해야할 사실은 중요한 것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단어를 써서 예술적 표현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즉흥성을 부정하는 셈이다. 만약 아이들에게 그리고 싶은 것들을 상상해서 그릴 수 있게 한다면, 그 아이는 다른 차선책들을 더 쉽게 떠올리는 어른으로 자란다. 현존하는 선택지들과 다른 선택지를 말이다.
이런 아이는 스스로를 즉흥적으로 표현하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우리가 아이들의 창의적인 순간들에 관여하거나 갑작스럽게 참견할 경우( “아들아 양한테는 날개가 없잖니. 그렇게 그리면 안된다. 내가 날개를 지워줄게.) , 그리고 이런 참견을 습관적으로 행할 경우 아이는 진솔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
“창의성에는 사물을 다르게 보기 위해 기존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보노(Bono)의 에드워드(Edward)-
이 능력을 강화해 해결책에 도달하자!
반대로 만약 창의성을 강화한다면 아이들의 넘쳐나는 상상력이 실제로 표현되도록 도울 수 있다. “정말 자유로운 양이구나. 날 수 있겠어!” “네가 양을 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구나!” “양이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거야?”…
“인간의 뇌보다 자유로운 것은 없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
이 모든 표현들이 아이의 표현을 지지할 수 있는 발언들이다. 이런 말들을 계속 해준다면 어른들 눈에는 난잡하기만한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다.
위트 넘치는 것은 미친 사람들의 특질이 아니다
많은 창의적인 어른들이 아이일 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독려받은 경우가 많다. 이들은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받아온 사람들이다. 반대로 창의적이지 않은 어른들은 대부분의 경우 어렸을 때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받아왔을 것이다.
이제 이런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자. 만약 어린 시절 훗날 도움이 되는 것들을 가치있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미친 사람”의 행위라고 낙인 찍힐 것이다. 이렇게 창의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이 사람들에게는 “적절하지 못한” 행동으로 비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자기 절제가 가능하면 보상을 받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묘하게 즉흥성이 제재를 당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창의성에는 이러한 즉흥성이 필수적이다. 즉흥성은 일상 속에서 존재해야 하고 이것으로 인해 실수해도 괜찮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창의성은 마치 잡동사니마냥 구석에 처박히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우리의 진심을 다해 무엇을 시도했다가 실패함으로써 인한 대가에 대한 두려움. 특정 직장과 같은 상황 속에서 자라나는 두려움 말이다…
“우리를 움직이고 우리가 만들지 않은 세상 앞에서 참을성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 없이는 창의성도 없다. 세상은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성장한다.”
-폴로 프레이(Paulo Freire)-
창의성: 상상력 넘치는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존재
창의력 넘친다는 것은 아주 풍부한 내면의 세계를 지녔다는 말은 아주 정확하다. 이 세계에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거쳐온 많은 차선책들로 가득하다. 이 세계는 정보와 다양한 모양과 색깔과 질감으로 가득한 짐가방과 같다…
우리는 정해진 구조대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능력치를 성장시킬 자유와 능력을 지닌 존재다.
“창의성은 예술가를 위한 특징이 아니다. 창의성은 모두에게 있다. 창작하는 사람은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통해 훗날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들을 제공한다.”
-필립 스타크(Philippe Starck)-
이제는 아름다운 생각들을 만들고 풀어놓는 데에 두려움을 갖지 말자. 우리는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