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적인 고통: 교훈이 되고, 우리를 연결시켜준다

04 6월, 2018

고통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우리가 내면을 돌아보고, 트라우마를 만들며 상처를 다시 여는 파괴적인 고통이 있다. 반면에 건설적인 고통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믿을 수 없는 힘과 타인과 더 교감할 수 있는 능력,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단테는 고통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통달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인가?그렇지는 않다.

고통과, 무경험을 선택하라면, 나는 고통을 선택할 것이다.
– 윌리엄 포크너-

첫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고통은 뇌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환경, 몸, 감각으로부터 어떤 신호를 받은 후에, 뇌가 그것들을 해석하고 고통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 스스로나 주변 사람의 신체적 또는 감정적 행복을 위협하는 것을 감지할 때 패닉 버튼이 눌리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우리가 느끼고 인지하는 모든 고통의 신호에는 목적이 있다. 이것들을 건설적인 고통이라고 말한다. 이런 고통은 일종의 경고 신호이기 때문에 무시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불에 손을 가까이 대면 뇌는 극심한 고통이라는 신호를 내보낸다. 이로 인해 즉시 손을 빼고, 뇌에서는 고통을 완화시킨다.

사실,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외상을 입을 때, 뇌는 그것을 거의 마치 화상처럼 해석한다. 고통에는 반응이 필요하다. 행동하는 것, 불에서 손을 빼는 것. 이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교훈으로 남는다.

건설적인 고통: 교훈이 되고, 우리를 연결시켜준다

건설적인 고통과 행복

무한한 쾌락의 상태에서 사는 것이 어떻게 진정한 난독증 사회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사람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였다. 그의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처럼 말이다. 끝없는 쾌락은 대단하지만, 현실과는 매우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는 즐거움과 대비되는 약간의 고통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날 집에 들어와서 뜨거운 초콜릿을 마실 때 우리는 만족감을 느낀다. 운동 선수들의 경우, 격렬한 육체적 노력 후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러한 노력에는 엔도르핀과 다른 체내 자극성 물질 덕분에 신체적인 노력의 고통을 완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이 즐거움과 행복의 감정을 실제로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격과 사회 심리학 리뷰(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와 같은 많은 연구들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 고통이 단기적이고 적절하다면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고, 주변 세상과 연결되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여자 요정

예를 들어, 본인이 강인했다고 생각되는 시기를 되돌려보자. 그 때는 용기를 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원인은 질병, 누군가의 죽음, 인생에서 느낀 가장 큰 실망이었을 수도 있다.

내면의 고통은 결국 우리를 강인하게 만들었던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그러한 힘 덕분에, 이제 자신의 행복을 창조하고 즐길 수 있게 된 우리다.

건설적인 고통: 상황에 대처하고 이런 고통을 끝내는 법

글의 초반에 우리는 감정적 고통이 어떻게 우리의 뇌에 의해 진짜 상해로 인식되는지에 대해 말했다. 이는 진짜가 아니다. 하나의 비유였을 뿐이다. 사실은 “국립 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된 연구로 인해 증명된 사실이다.

사람이 고통을 알지 못한다면, 동시에 기쁨 역시 줄어들 것이다.
-미셸 드 몽타인-

신경 과학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고통은 상상에 불과하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실존하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전방의 원형 피질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서적인 고통이 파괴적인 것이다.

하지만 만약 고통이 우리 상상력에 불과한다면, 지금 느끼는 고통을 중단할 수 있을까? 물론 진통제나 항우울제를 사용하지 않고서 말이다. 두 약은 신경구 피질의 통증을 무디게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고칠 수는 없다.

잊지 말아라. 고통은 관심 종자다. 마치 해안에 있는 등대가 우리에게 빛을 비춤으로써 전방에 암초가 있다고 경고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숨어 있기로 결정한다면, 절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암초는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선택은 방향을 바꾸고, 돛을 올리고, 키를 잡는 이다. 이로 인해 더 조용하고 순한 파도를 타고, 희망찬 바람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