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 페스터: 죽음을 모면한 남자

2020-06-25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하임 페스터는 생존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상식은 그가 한 번이 아니라 여덟 번의 죽음을 모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임 페스터(Chaim Ferster)는 유명인이나 예술가가 아니다. 92세까지 건강에 문제 없이 일한 이 97세의 노인은 우리가 모두 우러러볼 만한 그런 사람이다. 그는 나치를 물리치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1번도 아닌 8번을 탈출했다.

대부분의 젊은 시절을 전쟁의 공포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면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험은 하임 페스터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그의 가장 큰 승리일 것이다. 그는 살아남지 못했으므로 자신과 가족이 견뎌야 할 고통과 불명예에 집착할 수 있었지만, 대신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고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 없이 살아나갔다.

“우리는 유한한 실망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결코 무한한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현재 하임 페스터는 상냥하고, 감사하며, 현명한 사람이다. 그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포로 중 한 명이므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수백 번 이야기했다. 그는 또한 할아버지이고 65년 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며 사업에 성공하여 번영하였다. 

하임 페스터: 죽음을 모면한 남자

어두웠던 시간

하임 페스터는 1922년 7월 18일 폴란드의 소스노비에츠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또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정교회 유대인들은 이 도시 인구의 21% 차지했다.

그는 나치가 독일에서 권력을 얻음에 따라 그의 공동체 전체가 두려움에 처해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물론 걱정할 권리가 있었다. 1939년에 그의 도시는 나치에 의해 침략당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어 유대인 배척이 만연했다.

우선 그건 옷 위의 노란 별이었고, 거리에서의 차별이었으며,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그런 다음 최초의 유대인 게토가 설립되었다. 그 당시 하임 페스터는 17살밖에 되지 않았었지만, 여전히 그 끔찍했던 시절에 대한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1942년에 페스터의 삶은 영원히 바뀌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게토에서 기본적인 약품을 구할 수 없었으므로 폐렴으로 사망했고, 그와 그의 가족은 음식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굶주림으로 고통받았다. 같은 해, 게슈타포는 페스터의 어머니와 이모에게 당국에 보고하도록 명령했으며 그 후 다시는 그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비극과 희망

하임 페스터와 다른 유대인들은 게슈타포가 누군가를 체포하고 나면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재빨리 깨닫게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여전히 수용소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소문 및 수군거림에 근거한 것일 뿐이었다.

그때 페스터의 삼촌 중 한 명이 그에게 생명을 지칠 수 있는 조언을 해 주었다. 삼촌은 그에게 독일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말했다.

하임 페스터는 빈민가에서 재봉틀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아주 훌륭한 결정이었다. 1943년 마침내 그의 차례가 되었고 게슈타포는 그를 소환하여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

처음에는 인생이 매우 힘들었다. 그는 오시비엥침, 그라디츠, 그리고 니데로르셀 수용소에 있었다. 페스터는 나치가 기온이 영하 25º 이하일 때 죄수들에게 도로를 수리하게 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나치는 페스터의 기술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는 더욱 견딜만한 일을 주었다. 분명 그건 생존의 열쇠였다. 그라디츠에서는 발진티푸스가 발발했고 페스터도 병에 걸렸다. 그는 그 소름 끼치는, 즉 그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들의 완벽한 조직체를 기억한다.

하임 페스터: 죽음을 모면한 남자: 비극과 희망

해방

1994년 말 하임 페스터는 아우슈비츠로 옮겨졌다. 그는 자정에 그곳에 도착했었고 그 침묵이 매우 무서웠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피부에 코드를 문신 당했고 몇몇 끔찍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두 달 후 나치는 기술자가 필요했으므로 페스터를 다시 니데로르셀로 이관했다. 페스터에세 그건 마치 직업 학교에 가는 것과도 같았다.

연합군이 독일에 진격하자 니데로르셀은 1945년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모든 죄수는 매일 대량 처형을 하는 악명 높았던 부헨발트로 보내졌다.

그때 나치는 전쟁에서 패할 것을 알았으므로 가능한 한 많은 유대인을 죽이고 싶어 했다.

하임 페스터는 연합군이 수용소를 습격하여 모든 죄수를 해방했을 때 처형받을 줄에 서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죽음을 모면했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그의 가족 중 30명 이상이 처형을 당한 것이다. 그의 살아남은 사촌 중 한 명이 맨체스터로 도망쳤고 페스터는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결국, 페스터는 나치를 물리치고 오랜 시간 행복한 삶을 살았다.

Comins-Mingol, I. (2015). De víctimas a sobrevivientes: la fuerza poiética y resiliente del cuidar. Convergencia, 22(67), 3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