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살아 있는 전설

2020-06-03
밥 딜런은 컬트 뮤지션이다. 그는 전통적인 대중음악을 문학으로 바꾸었으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하게 하는 관점에서 현재 세계를 해석했다. 밥 딜런은 살아 있는 전설이다.

밥 딜런 (Bob Dylan)은 20세기 그리고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또한,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은 시이며, 그의 시는 음악이다. 그는 전 세계의 많은 대중문화 장벽을 깼는데, 이가 바로 많은 이들이 그를 대중 반문화의 아이콘으로 여기는 이유다.

밥 딜런은 그의 전기 작가에게 자신이 시인 딜런 토머스로부터 자신의 이름을 빼앗았다는 ‘루머’를 명확히 해명하는 일을 맡긴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매트 딜런이라는 카우보이 시리즈의 등장인물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단 한 번도 “내 노래가 문학적인가?”라고 스스로 물어볼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 아카데미에 감사한다. 시간을 내어 바로 그 질문을 대신 고려해 준 것과 그렇게 훌륭한 대답을 제공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밥 딜런-

밥 딜런의 음악은 복잡하지만 재미있다. 그의 음악은 록, 포크, 컨트리, 블루스, 재즈와는 다른 리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사야말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다.

밥 딜런은 노래를 통해 사회, 정치, 문학, 철학, 영적 주제를 이야기했다. 이것이 그에게 음악계에서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고 노벨상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밥 딜런: 소박한 소년

밥 딜런은 1941년 5월 24일 둘루트(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짐머맨이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계통의 유대인 집안 출신이고, 어머니는 리투아니아계 출신이다.

딜런은 6살 때까지 태어난 고향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소아마비에 걸려 온 가족은 어머니의 고향인 히빙으로 옮겨가야 했다. 히빙은 마치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곳이었다.

밥 딜런은 아버지의 전기용품 가게에서 청소부로 일한 바 있는데, 이는 그의 첫 직업이었다. 히빙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여자친구인 글로리아와 엔초를 사귀었는데 이 둘은 딜런이 처음으로 쓴 가사와 시에 영감을 주었다.

딜런은 히빙에서 음악을 배웠고, 생애 첫 번째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상당한 변화

딜런은 미네소타 대학에 다니다 1학년 말 학업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떠났다.

딜런은 뉴욕에서 자신이 그리던 진정한 ‘나라’를 발견했다.

딜런의 첫 공연은 카페 ‘화’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우상인 우디 거스리의 노래를 불렀다. 거스리는 그의 노래로 딜런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비록 이 카페 일을 통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일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마치 스펀지처럼 지켜보고 분석하고 결론을 내렸고, 모든 리듬을 파고들어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싶어 했다.

그는 칸트, 월트 휘트먼,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긴즈버그, 셸리, 포, 윌리엄 버러그스를 ‘집어삼켜 버린’ 책벌레였다.

딜런은 그 후 안목을 가진 재능 있는 스카우트인 존 해먼드를 만났다. 재능 있는 20살 시절의 딜런을 미래 대중의 우상이 되게 만든 매니저인 앨버트 그로스먼과 해먼드는 딜런을 스카우트했다.

스카우트 4년 후, 그들은 ‘밥 딜런’이라는 위대한 아이콘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독특한 예술가

1965년 밥 딜런은 널리 인정받았다.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은 그 해의 여러 미국 출판물이 20세기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하는 노래였다.

딜런은 10년 동안 자신이 제작한 9장의 앨범에서 그만의 확실한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아직도 딜런 같은 뮤지션은 없을 정도로 그만의 정체성은 매우 독특하고 확실하다.

밥 딜런은 기존의 대중음악에 완전히 변혁을 일으켰다. 그의 가사는 아름다운 시였고, 그의 음악은 소리의 절묘한 조합이었다.

사실, 그는 종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업적까지 이룬 바 있다.

딜런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아끼는 수많은 팬이 있다.

2016년,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노벨상이 대중음악가에게 간 것은 처음이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레너드 코헨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나서서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딜런에게 노벨상을 주는 것에 대해 한마디 하려 한다. 나는 이가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산에 올라 메달을 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즉, 딜런은 너무 대단해서 노벨상도 그저 기념품이 될 뿐이라는 말이다.”

Scaduto, A., Pérez, A., & Flórez, J. M. A. (1975). La biografía de Bob Dylan. Ediciones Juc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