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가 척 피니의 절약하는 삶

척 피니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 어떤 기준에서 보든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한 그는 늘 단순한 삶을 살았고 자신이 가진 대부분을 포기했다.
자선가 척 피니의 절약하는 삶

마지막 업데이트: 07 12월, 2020

이 글에서는 자선가 척 피니의 전기를 공유할 것이다.

우리가 척 피니(Chuck Feeney)와 그의 업적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연한 사고 때문이다. 이 비범한 자선가는 자신의 재산을 조용히 내어 주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 수천 명 또는 수백만 명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행을 비밀에 부쳤다. 실제로 우리는 서류 작업이 뒤죽박죽되어 그가 누군지 알게 되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척 피니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후자는 돈이나 부로  인해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반면에 피니는 물질적 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그는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경우에도 인도주의적 활동을 지지했다.

“절약하는 것은 지적인 일이다.”

-척 피니-

두 사람의 또 다른 점은 트럼프가 항상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관심을 얻기 위해 부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피니는 가능한 한 헤드라인에서 벗어나고 부자와 유명인의 명단에 오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피니가 스스로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말하지만, 현 미국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자신의 재산을 모았다고 말한다.

자선가 척 피니의 전기

보잘것없는 출신 배경

척 피니는 큰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노력 덕분에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그는 1931년 4월 23일 뉴저지에서 태어났으며, 얼마 전 미국에 도착한 보잘것없는 아일랜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였고 그의 아버지는 보험 판매원이었다.

그리고 피니는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태어났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고 그의 부모는 자녀를 위해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다가 피니는 10살에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일은 약간의 돈을 받고 집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파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는 한국 전쟁을 위해 공군에 입대했다. 그 후 그는 뉴욕의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에서 공부하기 위해 재향 군인에 장학금을 수여 하는 정부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그곳에서 그는 호텔 행정학 학위를 받았으며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큰 재산

척 피니는 로버트 밀러(Robert Miller)와 함께 1960년에 Duty-Free Shoppers(DFS)라는 회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면세 판매 개념의 선구자였으며 다른 나라에 주둔한 미군에게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업은 성장하기 시작했고 DFS는 빠르게 매우 성공적인 기업이 되었다.

그렇게 불과 몇 년 만에 피니의 면세 사업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업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빠르게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일부 평가에 의하면 그는 약간의 기이함을 가지고 있었다.

피니는 사치스러운 취향이 없었다. 그는 모험적인 삶을 산다든지 경매에서 이상한 물건을 사는 데 수백만 달러를 쓰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피니는 매우 금욕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값비싼 식당을 애용하지 않았고 항공기도 이등석을 이용했다. 그의 시계는 15달러였으며 큰 행사에서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큰 재산을 모았을 때 그는 그것이 자신과 그의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비밀리에 아틀란틱 자선단체(The Atlantic Philanthropies)라는 재단을 만들고 자신의 돈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큰 재산

자선가 척 피니의 전기: 위대한 인간

현재까지 척 피니는 미국 역사상 그 어떤 사람보다 비례적으로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미국 시민이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그는 8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많은 양의 돈을 기부한 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항상 재산의 대부분을 자신을 위해 비축한다.

하지만 피니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주었다.

그는 2백만 달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돈은 그와 그의 가족이 남은 생애를 살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다.

현재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파트를 임대해 살고 있다. 그는 차가 없고 여전히 이등석을 타고 여행하며 항상 소박한 식당에서 식사한다.

척 피니는 이 모든 자선 사업을 비밀리에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식 중 일부에 관한 몇몇 서류들이 그의 재산과 함께 그가 했던 모든 일을 드러내고 말았다. 피니의 자금 중 일부는 쿠바와 베트남의 보건 시스템 개선을 위해, 아일랜드의 평화 노력에 이바지하기 위해,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자금 조달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되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왜 그런 일을 했냐고 물으면 그는 그가 한 일로 인해 세상이 더 나은 곳이라는 것을 알고 행복하게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기부할 때 특별한 계획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단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피니는 또한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성취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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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nasiuk, A. (2018). El hombre más rico del mundo: Y las ideas que construyeron su patrimonio. Grupo Ne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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