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의사였던 페르가몬의 갈레노스

03 1월, 2021
페르가몬 갈레노스는 중요한 연구가 된 흥미로운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생물학적 진단과 지식이 거의 없던 시기에, 그는 수 세기 동안 의료 행위를 표현할 아이디어와 원칙을 수립했다.

페르가몬 갈레노스 (Galen of Pergamon)라는 이름은 의학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오늘날 모든 의사는 갈레노스의 가르침을 어떤 식으로든 사용한다. 히포크라테스 다음으로 고대 건강 분야의 가장 유명한 대표자로 간주한다. 그의 공헌은 당시 의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갈레노스의 개념은 천 년 동안 의학을 이끌었다. 인체에 대한 그의 연구는 인체 해부학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많은 업적 중에서, 공기가 정맥을 통해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혈액이 순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그는 심장 판막, 신장과 방광의 기능, 그리고 뇌의 몇 가지 기본 개념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발견을 했다.

갈레노스는 또한 전염병을 목격하고 묘사한 최초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갈레노스의 전염병으로도 알려진 안토니우스 역병의 직접적인 목격자였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역사를 둘로 나누었고 의사들은 역병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남겼다.

숙명의 페르가몬의 갈레노스

숙명의 페르가몬의 갈레노스

갈레노스는 기원전 129년 또는 130년에 그리스 통치하에 있던 도시이자 현재 터키의 일부였던 페르가몬에서 태어났다. 갈레노스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잘나가는 건축가이자 지주인 아일리우스 니콘이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것 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갈레노스의 부모는 아들이 훌륭하고 탄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전설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꿈에 나왔다고 한다. 그 꿈에서, 신은 아버지에게 그의 아들이 의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이든 다른 이유 든 아버지는 그에게 그 의사가 되도록 격려했다.

처음에 갈레노스는 신전이자 치유소인 아스클레페이온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그는 당시의 의학 지식과 종교적 신념을 결합했다. 훗날에는, 스미르나와 코린토스에서 연구했고 히포크라테스의 작업이 익숙해지면서 그의 훈련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훌륭한 의사였던 갈레노스

나중에 갈레노스는 당시 지식의 메카였던 알렉산드리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주로 해부학과 생리학에서 훈련을 마쳤다. 그 대도시에서, 그는 시체를 해부할 수 있었고, 이것은 그가 인체의 기능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검투사 학교의 의사가 되었고, 이것으로 인해 그가 타격과 상처에 익숙해졌다. 약 4년 동안 그곳에서 일했고, 치료사로서 명성이 높아졌다.

162년 그는 당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서 살기 위해 떠났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같은 황제들의 주치의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로마에 머무르면서 그는 연구자로서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기간에 그가 400여 점의 작품을 썼으며, 그중 150여 점만이 보존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확실한 각인

로마에서는 해부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갈레노스는 때로는 살아있거나, 때로는 죽은 동물에 대한 연구를 해야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신장과 척수의 기본 기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많은 작품이 171년 화재로 타버렸다.

그의 주요 작품은 ‘치유의 예술‘로, 이 논문은 기초적인 약전이다. 그의 큰 장점 중 하나는 헌신적인 실험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먼저 증거를 찾고 그에 대한 지식을 쌓은 과학인 이었다.

페르가몬의 갈레노스는 또한 깊은 윤리가 수반되지 않으면 의학 지식을 찾거나 행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의학이 무엇보다도 자선 예술이라고 믿었다. 갈레노스가 말하길 의사는 도덕적이고 규율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절제가 특징이라고 했다.

사망하기 전에 고향인 페르가몬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216년경에 사망했다.

갈레노스가 없었다면, 의학이나 제약 화학은 지식과 실행에서 그렇게 빠르게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Rodríguez, R. M. M., & Ballester, L. G. (1982). El dolor en la teoría y práctica médicas de Galeno. Dynamis: Acta Hispanica ad Medicinae Scientiarumque Historiam Illustrandam, 2,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