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우리는 왜 현혹되는가?

· 2019-06-05

요즘 “가짜뉴스”로 알려진 거짓된 뉴스 보도와 절반쯤의 진실이 판을 치고 있다.  오보는 오늘날 하나의 만연한 풍조이기에 이제 우리는 뉴스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확한 정보인데, 특히 우리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확한 정보다.

그럼에도 매일 매일 더 많은 가짜뉴스가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동기심리학의 도움을 얻어보자.

인간은 진실한 정보를 획득하려는 의식적인 열망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신념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동기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비록 가짜뉴스라 할지라도 자신의 위와 같은 동기를 충족시켜주는 메시지들을 수용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 역시 발생한다. 우리는 진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정보는 거부하게 된다.

신문

인지적 종결 욕구

인간이 가진 많은 동기 중 하나는 인지적 종결 욕구다. 이 욕구는 불확실성과 관계된 것이다. 이 욕구가 활성화되면,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를 확증해주는 단순한 메시지들에 갇히게 된다.

한 가지 예는 이민자들로 인해 모든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단순화된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세상을 선인과 악인으로 분리한다. 자국민은 선하고, 이민자는 악하다. 이 논리는 우리의 문제에 대한 ‘희생양’을 제공한다. 즉, 이제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충분한 조사나 검토 없이 단순화된 메시지를 믿고 수용하기 쉽다.

특정한 결과에 대한 욕구

위와 유사하게,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것이 가능하다고 확증해주는 메시지를 믿는다. 그 메시지가 자신들이 믿기 원하는 것과 일관성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자기 자신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만으로 어떤 것을 믿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쿠 클럭스 클랜의 회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가짜뉴스가 너무 터무니없고 우리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것과 모순된다면, 우리는 이런 뉴스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설혹 이런 뉴스가 어떤 특정한 효과를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적절한 지식이 없다면 극도로 과장된 뉴스조차 수용하게 된다. 몇 가지 연구는 교육 수준이 높고 고연령일수록 가짜뉴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이들이 뉴스의 진위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비판적 능력의 자원을 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가짜뉴스 보도

지식이 부족할 때 사람들은 보통 전문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신뢰하게 된다. 당신의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신뢰할만한 정비공을 부를 것이다. 당신이 아프다면, 당신은 자신이 신뢰하는 의사를 찾아갈 것이다.

과거에는 정보화 사회의 정치 및 세계적 이슈의 경우, 신뢰할만한 사회 기관(정부 기관, 국회의원, 대통령, 대중매체 등)의 호소가 대중의 믿음을 장악하고 폭넓은 신뢰를 누렸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정부도, 미디어도, 지난날과 같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위기와 부패는 사람들이 이전처럼 정부와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게 되는데 기여했다. “주류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부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인지적 종결과 특정 결과에 대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다른 정보원을 찾게 되었다.

소셜미디어

범람하는 가짜뉴스

인터넷의 발전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전문가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지고 가짜뉴스는 보다 확산되었다. 급격한 변화와 증가하는 불안(예를 들어, 테러리스트 그룹, 경제적 불안정, 난민의 위기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혼란스러운 시대, 우리는 계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얻기 원한다. 즉,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그 순간 그것을 알기 원한다.

위와 같은 욕구 및 기존 정보원으로부터의 분리로 인한 공백 때문에 새로운 뉴스원의 문이 열렸다. 특히 인터넷 및 소셜미디어 상에서 말이다.

이러한 새로운 뉴스원들에 대한 제재는 매우 적거나 없다. 그뿐 아니라 이 뉴스원들은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를 바꾸고자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거나 그렇게 하도록 유혹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사람들의 견해를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이든, 오늘날의 오보 전염병은 사회적 염려의 대상이 되었다. 훼손된 신뢰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회 기관의 노력을 요청하고 정당화하면서 말이다.